
- <아랑사또전>, 차별화된 액션 연출에 대한 고민
[엔터미디어=조민준의 드라마 스코프] 올해 들어 본 드라마의 액션 장면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랑사또전> 3회에서 은오(이준기)와 다수의 원귀들이 벌이는 패싸움 신의 도입부였다. 외딴 광에서 원귀들에게 몰린 아랑(신민아)은 놈들에게 두들겨 맞을 위기에 처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은오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가지고 다니던 팥으로 가볍게 제압하려 하였으나 이게 웬걸. 달랑 한 쪽 남은 팥알 탓에 원귀들의 비웃음만 사고, 은오는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일당들을 하나씩 때려눕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처음 십여 명 남짓의 원귀를 차례차례 제압하는 동안 카메라는 커트 없이 물 흐르듯 은오의 발차기와 주먹질을 담아낸다.
이 장면 이전에 한국의 드라마에서 두근거리는 액션 장면을 만났던 기억은 2009년의 <돌아온 일지매>, 그리고 2007년의 <태왕사신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태왕사신기> 17회에서 담덕(배용준), 사신들이 화천회를 급습하는 시퀀스는 개중 백미로, 역광이라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주무치(박성웅)가 도끼로 적병들 두셋을 쓰러트리고 나면 화면 우측에서 날아든 수지니(이지아)의 니킥이 작렬하고, 이어서 저 너머 계단에서 담덕이 적들을 베며 천천히 나타난다. 슬로우 모션으로 박력이 배가된 이 장면 또한 내내 커트 없이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퀀스를 너무 좋아하여 <태왕사신기>가 일본에서 극장 개봉했을 때 도쿄에 갔다가 신주쿠의 어느 극장에서 17회만 다시 관람한 적도 있는데, 상영이 끝난 후 현지 관객들의 입에서도 액션 신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던 걸 기억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야기한 <아랑사또전>과 <돌아온 일지매>, <태왕사신기> 액션 스타일의 방점은 롱테이크, 그리고 다소 거리를 둔 카메라에 있다. 사실 9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는 드라마에서의 액션 연출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다모> 이후로는 영화와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화면들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고급 무술감독 및 스턴트 인력들의 유입도 큰 역할을 했지만 촬영기법의 혁신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본다. 말하자면 고속 재생에서부터 슈퍼 슬로우까지 자유자재로 담아낼 수 있는 카메라를 이용해 스타일리시한 액션 콘티를 드라마 현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영화는 물론 드라마에서도 대세인 이 ‘스타일리시’한 액션의 내용을 한번 들여다보자. 인물에게 근접한 카메라는 대개 핸드헬드 화면으로 상황에 맞춰 격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액션 동작 하나하나는 심지어 0점대 초단위로까지 잘게 쪼개져, 타격의 순간은 다채롭게 붙은 연속 커트들과 효과음으로 극대화된다. 인물들이 직접 치고 박지 않는 이상 모든 액션 신은 결국 눈속임에 지나지 않을 테이지만, 최근 드라마들의 액션 신들을 보면 핸드헬드와 커트 분할을 통한 그 눈속임이 절정이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가장 효율적으로 액션을 찍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으나, 그 효율 안에 액션의 미학이 들어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액션 트렌드가 정착된 데에는 대략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먼저, 과거에는 액션 전문 배우들이 따로 존재했고 액션물과는 인연이 없는 스타들도 많았으나 촬영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액션스타가 될 수 있다. 맷 데이먼이나 원빈처럼, 그것도 단순히 액션을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초절정고수처럼 보이게 말이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드라마업계에 한정된 이유로,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미학적인 액션을 고민할 여유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교하자면 일일/주말극 세트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로 바스트-클로즈업의 대화 신만 딱딱 찍어내는 것처럼, 커트 분할의 액션 콘티는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그럴 듯한 액션 장면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요컨대 <아랑사또전>의 롱테이크 액션 신이 인상적이고도 이채로운 것은, 그러한 피치 못할 트렌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액션 전문 배우가 아닌 이들을 데리고 필요한 부분만 찍는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빈약한 동작들을 숨긴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카메라가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커트를 나누지 않고 찍는다면, 배우는 몸 전체를 제대로 활용하여 사전에 안무된 합을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
어쩌면 이준기라는 배우가 이전에도 <일지매>라든가 <개와 늑대의 시간>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액션 연기를 충분히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터인데, 덕분에 심지어 카메라는 수직 부감과 같은 자유로운 구도에서도 능히 액션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4회에서 돌쇠(권오중)가 최대감(김용건)의 수하들과 막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라든가 9회에서 은오가 부채를 무기로 1대 다수의 대결을 펼치던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아랑사또전> 액션 연출의 일관된 기조라 할 만하다.
현장의 불가피한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어디서 본 것 같은 관습적인 판박이 커트분할 액션도 이제는 별반 대단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그리고 <아랑사또전> 액션 신들의 진짜 미덕 또한, 그렇게 관조적인 화면으로도 충분히 박력을 전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급박한 커트 분할을 통한 몽타주도 새로운 차원의 액션 연출로 각광받던 때가 있었다. 한국의 드라마에서 그 시초는 1995년작 <모래시계>였다. 그 선구자조차 이미 <태왕사신기>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시도를 선보인 바, 안방에서도 좀 더 다채로운 액션에 대한 고민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조민준 zilch92@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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