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희라와 신애라가 ‘청춘기록’으로 거듭난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아마도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 방영 초반, 배우 박보검의 몇몇 팬들과 청춘물 마니아들에게 배우 하희라와 신애라는 미운 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주인공 사혜준(박보검), 안정하(박소담)의 로맨스보다 혜준 엄마 한애숙(하희라)과 해효 엄마 김이영(신애라)티티카카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듯 보였으니까.

하지만 <청춘기록>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이 드라마의 팬들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알고 보니 <청춘기록>은 단순 청춘 로맨스물이 아니었다. <응답하라 1994> 시절에 태어난 사혜준과 안정하, 원해효(변우석)가 어떻게 가족들과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그 부분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연히 사혜준의 엄마 한애숙과 혜준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해효의 엄마 김이영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2020년의 가족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에서 <청춘기록> 속 엄마들도 착한 엄마 나쁜 엄마라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요소가 스며들어 있는 인물들로 표현됐기 때문이었다.

한애숙은 겉보기에는 그냥 가난한 집의 수더분한 가정주부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청춘기록>이 진행될수록 이 캐릭터의 매력이 드러난다. 한애숙은 어찌 보면 사혜준 가족 중 가장 생각이 깊고 포용성이 깊은 인물이다. 또 자식들을 소유물이 아닌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줄 줄 안다. 그렇기에 사혜준과 한애숙의 소소한 대화 장면들은 이 드라마 전체를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청춘기록>에서 사혜준은 겉멋 들거나 갑질이 몸에 밴 연예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타고난 선비 느낌도 아니고 고집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깊고, 그러면서 감성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어찌 보면 작가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묘사한 것 아니야, 라고 의심이 갈 법도하다. 하지만 <청춘기록>의 엄마 한애숙을 보면 사혜준의 인성이 납득이 간다. 저런 엄마가 옆에 있고 함께 대화하며 자랐다면 저런 어른으로 자랐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한편 해효 엄마 김이영은 상류층의 헬리콥터맘으로 등장한다. 보통 이런 종류의 캐릭터가 집착의 화신에 고집불통으로 그려졌던 것과 달리, 김이영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오픈마인드를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청춘기록>에서 김이영은 재력을 기반으로 자식들을 매니지먼트하는 데 뛰어난 수완을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보기에 아들 해효는 욕심이 별로 없고, 딸 해나는 공부만 잘할 뿐 맹탕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어떻게든 두 아이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부잣집 아이들은 부모를 거역할 수 없다는 걸 알만큼 그녀는 세상의 이치에 빠삭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청춘기록>을 보다보면 실은 김이영이 해효와 해나와 비슷한 종류의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김이영은 자식 문제 외에는 은근히 맹탕이며 특히 한애숙과 진우 엄마 경미(박성연)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김이영은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캐릭터여서, <청춘기록>에서 빌런의 역할과 개그 캐릭터의 역할을 동시에 해낸다.

흥미롭게도 이 두 캐릭터를 맡은 인물들은 각각 1991MBC <사랑이 뭐길래>에서 자매로 등장했던 하희라와 신애라다. 과거 1980년대 청춘물 하이틴스타와 1990년대 한국의 피비 케이츠로 불린 두 배우는 <청춘기록>에서 과거와는 다른 엄마로 등장한다. 그리고 <청춘기록>은 이 두 배우의 성장기이기도하다.

그간 하희라는 수많은 주말극에 주연을 맡아왔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더구나 하희라는 막장 주말극 특유의 감정을 쏘아대는 연기에 최적화된 배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춘기록>에서 하희라는 오랜만에 본인의 연기 인생을 갱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 사혜준을 비롯해 가족들 사이에서는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엄마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들 사혜준을 걱정하는 엄마의 눈물 연기에서, 이 배우는 찐 엄마 같은 진솔한 감정 연기를 보여준다. 사혜준이 송금한 돈을 받아보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 울먹일 때면 보는 사람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신애라는 오랜 기간 연기를 쉬었기에 극 초반 무언가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신애라는 영리하게 연기의 중심을 찾고, 이 캐릭터를 매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김이영이란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신애라는 그간 배우로서 가지지 못한 새로운 페르소나를 얻어낸 느낌이다. 오히려 그녀가 최근 MC를 맡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본캐보다 김이영이라는 부캐가 더 매력적일 만큼.

결과적으로 <청춘기록>에서 배우 하희라, 신애라는 그 세대와 함께 성장하고 가족을 이룬 세대에 공감과 호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청춘기록>을 통해 오랜만에 두 배우가 추억의 스타에서 지금 이 순간의 배우로 돌아온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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