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어게인’, 18년 전으로 돌아간 드라마의 한계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중년의 남자가 10대 농구선수로 돌아가는 영화 <17어게인>은 신나게 직진하는 오락영화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남자의 좌충우돌이 꽤나 유쾌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메이크작 JTBC 월화드라마 <18어게인>은 무거움 위에 유쾌함이 떠 있다. 물과 기름처럼.

한국판 주인공 중년남자 홍대영(윤상현)은 농구선수 출신이고 다시 10대로 되돌아가 농구부 고우영(이도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홍대영은 10대로 돌아가 유쾌한 청춘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의 무게감을 10kg 정도 더 짊어진다. 방황하는 두 자녀들을 신경써야하고, JBC 아나운서로 입사한 아내 정다정(김하늘)을 위해서도 두 발 벗고 나선다. 또 과거 10대 시절 사이가 나빴던 아버지 홍주만(이병준)과는 다시 10대의 나이에 부자간의 정을 쌓아간다.

어찌 보면 <18어게인>은 원작에 한국적인 신파 감성이 가미된 드라마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드라마는 휴먼드라마가 아니라 중반부터 아니 처음부터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기 시작한다. JBC에 입사한 정다정의 성공기나 홍대영 아이들 고민까지는 뭐 그렇다고 치자. 그건 홍대영의 가족 이야기기도 하니까.

하지만 홍대영의 비밀을 아는 절친이자 고우영의 아버지 노릇도 하는 고덕진(김강현)의 서사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고덕진은 성공한 덕후여서 그가 등장할 때면 굉장히 화면이 요란하다. 여기에 고덕진이 우영의 담임 옥혜인(김유리)을 짝사랑까지 한다. 물론 옥혜인 역시 알고 보면 숨은 덕후라는 서사까지 담겨 있다.

곁가지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거 홍대영을 짝사랑했던 주애린(이미도)이 고우영을 짝사랑하는 이야기. 정다정을 연모하는 야구선수 슈퍼스타 예지훈(위하준)과 혼자 딸을 기르는 예지훈의 가족사. 여기에 고교시절 정다정을 좋아했던 농구코치 최일권(이기우)의 얄미운 행각과 입시비리 문제까지 드라마를 비집고 들어간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KBS주말극의 50부작 안에 들어가도 충분할 법한 줄거리다. 하지만 <18어게인>은 중간 중간 곁가지를 쳐내고 또 곁가지를 만들면서 12부를 달려온다. 그 수많은 이야기의 조합에 시청자들은 즐겁기보다 벅차고 어수선함을 느낀다.

<18어게인>이 보여주는 18년 전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극적 장치 역시 당황스럽다. JBC라는 일류 방송사에 들어간 정다정이 회사에서 미운 털이 박혀 커피 타는 심부름이나 하는 일화부터 시작해서(18년 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설정을 다시 보다니) 정다정의 이혼이 전국민의 지탄을 받는 상황도 지금의 인식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받는 직장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얄팍한 접근이 아니라 2020년에 어울리는 새로운 장면들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입시비리로 학부모를 괴롭히던 최일권을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 단죄하는 장면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학교 강당 뒤편에 숨어 있다가 한 사람씩 제가 증언하겠습니다.”라며 등장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 하는 시청자들이 과연 존재할까 싶다.

정다정이 이혼 소재의 생방송 파일럿 <위기의 부부들>을 진행하는 것은 흐름상 이해는 갔다. 그 방송 전개과정을 보여주며 드라마가 무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납득은 됐다. 다만 너무 길었고, 작위적이었고, 18년 전의 한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극 중 극 느낌의 장면이었다.

이쯤 되면 <18어게인>에서 18년 전으로 돌아간 건 주인공 홍대영이 아니라, 드라마 자체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18년 전이었다면 <18어게인>에 호의적인 시청자들의 수가 좀 많았을지 모르겠다. 그때에 비해 시청자들의 눈은 높아졌지만, <18어게인>은 화면은 현란해도 18년 전 그대로의 재미와 감동을 보여주며 웃고 감동하자 말한다. 당연히 드라마와 시청자 사이의 감성코드가 안 맞을 수밖에 없다.

다만 드라마 <18어게인>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홍대영과 홍대영 아버지 홍주만이 화해하고 아버지와 아들간의 친밀감을 다시 쌓는 장면들은 충분히 아름답다. 여기에 홍대영이 수화로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장면도 짧지만 감각적이면서도 뭉클한 순간이었다. 정다정과 예지훈, 정다정과 고우영 혹은 홍대영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따라가는 장면도 매력이 있다.

아울러 배우 김하늘과 각각의 남자 배우들은 굉장히 잘 어울린다. 위하준, 윤상현, 이도현 세 명의 배우들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김하늘과 다른 느낌의 로맨스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매력적인 순간들이 너무 과도한 곁가지들과 낡은 방식의 에피소드 전개에 묻혀 버리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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