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맨: 일방통행 서울민국’, 절박한 마음으로 소멸해가는 고향의 안부를 묻다
‘로드맨: 일방통행 서울민국’, 길 위에서 ‘서울공화국’의 현실을 묻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MBC <주말 뉴스데스크>의 코너 ‘로드맨’은 흥미로운 변종이다. ‘길 위에 답이 있다’며 기자가 직접 현장을 샅샅이 뛰어다니는 저널리즘은 과거 <뉴스데스크>를 대표했던 코너 ‘카메라출동’과 그 DNA를 공유하지만, 염규현 기자의 캐릭터성을 강조하고 수시로 끼어드는 유머코드를 강조하는 점은 이 코너가 명백히 유튜브 세대를 겨냥한 저널리즘을 추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로드맨’은 <뉴스데스크> 버전과 유튜브 버전의 편집을 다소 다르게 가져가는 것으로 레거시 미디어 시청자들과 유튜브 시청자들을 각기 공략해왔다. 예능은 다큐의 문법을 차용하고 저널리즘은 예능의 화법을 빌려오는 장르 혼성의 시대 최전선에 있는 ‘로드맨’은, <뉴스데스크> 코너 역사상 최초로 설 특집 단독 편성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워크맨’으로 인기를 모은 프리랜서 아나운서 장성규를 섭외하는 것으로 특유의 유연함을 과시했다.
‘로드맨’이 2020년 3개월에 걸쳐서 조명했던 ‘일방통행 대한민국’ 시리즈를 한데 묶은 <로드맨: 일방통행 대한민국>. [TV삼분지계] 평론가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접할 적마다 통감해 마지않았던 사안들이지만 보도 이후 별반 달라진 바 없음에 더 더욱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 수도권에 살고 있는 시청자들,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조금은 무심하게 여겼을 지방소멸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프로그램의 절박함에 공감한 셈이다. 남지우 평론가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11/9>(2018) 속 플린트 시가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가난한 도시라는 이유로 연방정부의 외면을 당했던 사례를 떠올리며, 단수에 시달리는 속초 시민들의 삶을 고발한 <로드맨: 일방통행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에 찬사를 보냈다. 이승한 평론가는 3개월 간의 연속보도를 한 시간 안에 축약하면 디테일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메시지가 더 선명해진 것이 놀랍다며, 처음부터 명확하게 문제의식을 설정하고 출발한 훌륭한 시리즈물이었음을 입증했다는 평을 남겼다.

◆ 괜한 협박이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집중현상을 파헤친 ‘로드맨 - 일방통행 서울민국’ 편, “모두가 한쪽으로 쏠린 배는 결국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로드맨 염규현 기자의 비장한 발언이다. 내비맨 장성규 씨는 ‘서울이 고향인 게 미안할 정도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몰랐다’라고 말한다. 나 또한 깊이 공감한다. 그간 MBC 〈주말 뉴스데스크〉에서 접할 적마다 통감해 마지않았던 사안들이지만 보도 이후 별반 달라진 바 없음에 더 더욱 미안하다. 2020년 조사 결과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제2의 도시라는 부산만 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 인구들의 탈 부산이 급속화 되는 중이라고. 심지어 부산이 ‘노인과 바다’라는 소릴 듣는다니, 부산이 이 정도일 때야 다른 지역은 오죽할까.
하루빨리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고향을 떠나고 싶다며 ‘구미야 미안하다’. 구미로 삼행시를 지은 구미 고등학생. ‘사람의 인권 중 하나가 치료받을 권리인데 시골에 산다고 왜 그게 없어야 하느냐’, 응급 의료 시설 폐쇄로 고통받는 전남 영암 지역 의료진의 탄식 어린 항의.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지방 일자리, 교육, 의료 문제들이 폐부를 찌른다.
위기의 지방 도시들의 자구책은 서울과의 교통을 더 원활하게 만들거나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거나. 그러나 애써 수도권 간의 이동 시간을 줄인 결과 오히려 탈 지역만 부추겼다니 어쩌면 좋을까. 지자체들이 백방의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모양이다. 가장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일은 수도권에서는 지방의 고민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 ‘나만 아니면 돼!‘가 이렇게 무섭다. ‘모두가 한쪽으로 쏠린 배는 결국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이거 괜한 협박이 아니다.
정석희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물 문제가 드러내는 것
‘물’이 부족해 여름엔 빗물 샤워를 한다는 속초 고지대 마을의 이야기. 지방 도시의 ‘물 문제’를 다루었던 마이클 무어의 영화가 떠올랐다. 다큐멘터리스트 무어의 여정은 ‘어떻게 나의 고향 플린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나’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제너럴모터스가 공장 문을 닫고 3만 명의 직원을 대량 해고하면서 폐허로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을 데뷔작 <로저와 나>(1989)에 담았던 그는, 영화 <화씨 11/9>(2018)로 플린트를 다시 찾는다. 고향 사람들이 이번에는 납중독으로 죽어가고 있다. 잘못된 물 정책으로 인해 온 도시의 수도에서 납이 섞인 갈색 물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시간 주 플린트 시는 미국에서 흑인 인구 비율과 빈곤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무어는 유색인종이 사는 가난한 도시의 문제일수록, 연방정부가 그에 대해 무심하고 태연하게 군다 주장한다. 미시간의 주지사가 공화당과 결탁한 인물이긴 하지만, 이 수돗물 오염사태는 민주당의 오바마 집권기에 발생한 일이다. 보건당국은 주민들의 납중독 수치를 조작했고, 그 사실을 내부고발한 직원은 해고당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민들을 위로한답시고 도시를 직접 방문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서울민국’ 현상의 원인은 미국의 이유와는 다르지만, 분명 비슷한 사태를 낳았다. 속초에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어떤 마을들엔 물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불시에 찾아올 단수를 대비해 평소에는 빗물을 모아 놓고 산다. 이 급작스런 난개발의 원인은 외지인의 유입. 속초 원주민이 아닌 외지인들을 위해 지은 신축 아파트들은 수도권 거주자들의 ‘세컨 하우스’일 뿐이다. 이 때문에 인근 도시들에 물을 동냥하러 다닌다는 속초 시장의 말은 정말 충격적이다. 빗물로 머리를 감으면 느낌이 참 부드럽다는 어느 주민의 농담만이 위로다.
항상 시사 콘텐츠에 대한 남다른 욕심을 보여왔던 MBC.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가장 고생하며 지나온 방송국이라서 그런 걸까? <로드맨>을 보니 마이클 무어가 그랬던 것처럼, 저널리즘은 또 다른 방식의 저널리즘으로 극복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물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선 플린트 주민들의 구호가 머리에 맴돈다. “똥물을 마셔라! 똥물을 마셔라!”
남지우 칼럼니스트 jeewoo1119@gmail.com

◆ 축약을 할수록 더 명료해지는 문제의식
MBC <주말 뉴스데스크>의 코너 ‘로드맨’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진득하게 선보였던 장기 프로젝트 ‘일방통행 대한민국’ 시리즈를 한데 묶어 설 특집 프로그램 <로드맨: 일방통행 대한민국>으로 공개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고도 걱정스러운 소식이었다. 훌륭하게 잘 만든 뉴스 콘텐츠가 독립 편성이 되어 어엿한 단독 프로그램으로 선보일 기회를 얻는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한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3개월 간의 보도를 압축해 넣는 과정에서 디테일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드맨: 일방통행 대한민국>은 압축하면 압축한 대로 그 나름의 매력을 지닌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당연히 매 회차를 따로 챙겨보는 것에 비해서는 디테일들이 사라진 부분들도 있다. 특히 대중교통 인프라가 줄어들면서 노인 인구의 시내 나들이가 어려워진 것을 시 예산을 들인 택시 바우처 발급으로 대체 중인 목포시의 사투는, 독립 편성에 담아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각 도시가 경험하고 있는 고충을 모아 한 시간으로 압축하자, 회차별로 끊어서 봤을 때에는 잘 그려지지 않았던 큰 그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방의 현실을 차례로 점검한 끝에 그렇게 모두가 이 악물고 모인 서울의 삶은 과연 행복한지 점검하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로 달려가는 편집리듬은, 한 시간으로 압축한 버전이 아니었다면 경험하기 어려웠을 정서적 충격을 선사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로드맨’의 ‘일방통행 대한민국’ 시리즈가 얼마나 탄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 시리즈였는지를 증명한다. 시리즈 전체의 문제의식에 흔들림이 없고 구성이 탄탄하니, 다이제스트판으로 압축을 해도 그 매력이 사라지지 않고 문제의식이 더 선명해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물론 지방 소멸 문제를 다루면서 정작 그 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지역 MBC와의 공조는 부족해 보였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일단은 길게 봐도 다이제스트판으로 봐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저널리즘 시리즈물 포맷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칭찬할 만하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 영상=MBC. 그래픽=이승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