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대예능시대, 그리고 ‘뉴페이스 올드보이’의 약진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최근 MBC의 편성은 예능판 전체의 축소판 같다. MBC가 2021년 초반은 드라마보다 예능에 공격적으로 힘을 싣는 느낌이다. 새로운 드라마 소식은 잘 안 들리는 반면 예능에서는 파일럿과 정규 편성 프로그램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과거 드라마가 방송되던 시간대를 예능과 교양이 채우고 있는데 특히 예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보인다.
이는 SBS도 비슷하다. <펜트하우스2>가 큰 인기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주중 미니시리즈가 없고 방송 중인 드라마가 몇 편 안 되는 것은 MBC와 마찬가지다. 다만 SBS는 예능을 대대적으로 시도하는 느낌은 없다. MBC와 SBS는 한동안 없던 주중 미니시리즈를 이달 말 다시 시작한다.
방송가에서 일반적으로 파일럿을 많이 소개하는 설에 앞서 MBC는 이미 음악 예능 <스친송(스타와 친구가 부르는 송)>과 스토리텔링 괴기 토크쇼 <심야괴담회>, 배달 먹방 <배달고파? 일단 시켜!>를 파일럿으로 선보였다.

이 기간 지난해 추석 파일럿이었던 먹방이자 쿡방인 <볼빨간 신선놀음>을 정규편성했고 설 파일럿으로는 사진 소재 관찰 예능이라 할만한 <사진정리서비스 폰클렌징>을 내놓았다. 2월 말에는 박상원, 전광렬, 윤다훈, 김유석 등 중년 배우들의 활기찬 인생을 소개하는 <OPAL이 빛나는 밤>을 2부작 파일럿으로 방송했다.
아울러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을 캐스팅해 화제가 된 <쓰리박>과, 간이역을 중심으로 시골 마을의 사람 냄새나는 삶을 스타들이 역무원이 돼 소개하는 <손현주의 간이역>(이하 <간이역>)이 2월 정규 편성에 추가됐다.
<심야괴담회>와 지난해 8월 파일럿으로 소개한 <아무튼 출근>은 3월 정규 편성이 확정됐다. 여기에 8살 아이들이 인터뷰어로 대한민국 최고 셀럽들을 인터뷰한다는 흥미로운 발상의 <누가누굴 인터뷰>가 5일 파일럿으로 2부작 방송에 들어갔다. 주식 예능인 <개미의 꿈>도 오는 11일 파일럿으로 선보인다.

과거라면 방송 예능가 전체에 해당할 프로그램의 물량과 다양함이 MBC라는 한 방송사 내부에서 쏟아지고 있다. 먹방쿡방, 스토리텔링, 관찰, 음악 등 여러 포맷에 걸쳐 공포, IT, 배달, 주식 등 다양한 소재와의 결합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실로 MBC의 ‘대예능시대’라 부를 만하다.
하나로 묶기 힘든 다채로운 시도 속에서 한 가지 도드라지는 특징은 ‘뉴페이스 올드보이’의 가치 상승이다. TV 주시청층이 중장년으로 고착되면서 예능에서 늘 찾고자 애쓰는 새 얼굴의 연령대가 올라가고 있다.
종편 경우 주시청층이 상대적으로 고령층으로 더 한정돼있고 출범 초반 젊은 스타들의 섭외에 어려움이 있어 이렇게 된 지 오래지만 지상파에서의 이런 모습은 어떤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지상파에서 관찰 예능은 <나혼자 산다>를 비롯한 많은 프로그램에서 알 수 있듯 전반적으로 젊은 스타들이 주를 이루고 중장년 연예인들은 보완적 역할로 방송에 등장했다.

하지만 <OPAL이 빛나는 밤>은 중장년 시청자들의 젊은 시절 스타였던 박상원, 전광렬, 윤다훈, 김유석 등이 주인공이다. 가장 막내인 김유석이 56세인 이들은 본업인 연기 활동이 전성기에 비해 줄어든 나이지만 사진작가로 활동하거나(박상원) 주류 회사의 임원을 겸직하면서(윤다훈) 새로운 일에도 한창이다.
일 외에도 캠핑에 도전하거나(전광렬) 집에서 LP를 감상하면서 장작 난로 곁의 운치를 즐기는(김유석) 삶은 중장년 나름의 활기가 있다. 물론 때로는 갱년기와 자존감의 하락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이들 나름의 활기와 즐거움은 젊은 스타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 예능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하지 않았다.
관찰 예능의 대상은 개인적 삶이 궁금할 만큼 스타성이 높으면서도 공개가 적어 신선할수록 가치가 높다. <OPAL이 빛나는 밤>의 주인공들은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게는 스타성은 높으면서도 그간 개인 삶의 공개는 적었기에 흥미로울 수 있었다. 지난달 27일 정규 방송을 시작한 <간이역>도 비슷한 경우다.

예능 새내기지만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한 스타 배우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손현주를 예능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어찌 보면 <쓰리박>의 박지성도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올드보이라는 의미는 실제 고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에게 오랜 시간 익숙했던 스타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박지성도 예능에서는 뉴페이스 올드보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박지성의 <쓰리박> 출연 이전 근래 들어 스포츠 레전드들이 예능에 대거 러브콜을 받는 것도 이런 흐름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관찰 예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뉴페이스 올드보이들의 몸값 상승은 젊은 층에서 점점 더 높은 연령대로 시청층의 이동을 겪고 있는 지상파 방송들에게 보편적인 현상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어 지켜볼 일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M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