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손현주, 30년 만의 예능 도전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으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새 주말예능 <손현주의 간이역>은 꽤나 담백하다. 제목 그대로 데뷔 30년 만에 예능 프로그램을 맡은 배우 손현주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전국 각지에 있는 257개 간이역을 전부 다녀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냥 찾아가면 섭섭하니 배우 임지연과 코미디언 김준현과 팀을 이루고 임시 역장을 맡아 이틀 정도 역사를 돌보고 이웃들과 소통한다. 왠지 아사다 지로의 소설 원작 영화 <철도원>을 보는 듯한 감성이 느껴진다.

자본과 경제, 효율과 선택의 논리에 의해 옛것이 사라져가는 세태에 대한 감성적 접근, 도시의 삶과는 조금 다른 리듬으로 흘러가는 시골의 정취, 소박한 삶의 현장이 주는 아름다움 등등의 정서적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지역 명소와 맛을 담는 상징으로 간이역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능한 오래도록 우리 곁에 살아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따뜻한 감성과 선한 영향력의 발휘, 이웃들과 나누는 정 등 손현주의 말대로 예능이라기보다 잠시 떠나온 공간에서 느끼는 힐링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은 억지웃음보다 즐거움을 내세우면서 조바심 내지 않고 촬영하고 있고 자연스러운 모습, 아름다운 모습 담으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손현주도 화려하게 포장돼서 웃기는 재미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편안하고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해서 기쁜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골 간이역이라는 공간, 그에 대한 애정부터 푸근함이 인상적인 배우 손현주를 중심으로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까지 다 좋다.

그런데, ‘힐링이라는 정서가 예능의 재미 요소로 들어온 지는 얼추 잡아도 8년은 됐다. 힐링 콘텐츠가 기존 예능의 재미와 다른 선로가 아니란 이야기다. 여기서 <간이역>은 기존 힐링 콘텐츠들과는 사뭇 다른 선택을 한다. 어느 한 공간에서 머무르면서 이야기를 쌓아가는 대신, 매번 새로운 간이역을 찾아가 소개 및 체험을 한다. 힐링 예능의 정석과도 같은 출연진들의 발전, 성장, 다져지는 스토리라인은 (5회까지는) 들어냈다.

<간이역>만의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다보니, 배우, 예능인의 본업과 캐릭터를 그대로 갖고, 운영이라기보다는 체험을 하는 데서 볼거리는 한정된다. 손현주는 30년 만에 예능을 맡았다만, <간이역>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따로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배우 손현주의 모습 그대로다. 이는 식탁 앞에서 분량을 많이 가져가는 김준현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로컬에 다가가는 방식도, <어쩌다 사장>처럼 스며드는 소통 방식이 아니라 서울에서 연예인들이 내려왔음을 알리는 이벤트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는 느림의 미학이나 시골의 정취만으로 다음주 1시간 30분을 기다리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소외받지 않도록 전국 모든 간이역을 돌아보는 취지는 정말 좋지만, 지금의 <간이역>은 예능 콘텐츠 측면에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의 조금 더 컨셉추얼한 버전과, 일일정보 프로그램의 확장된 리포터 콘텐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출연진부터 해당 간이역 업무나 동네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엄연한 게스트인데, 자기 자리도 명확히 없는 상황에서 매번 다른 게스트들이 그들을 보러 찾아오니 매표 업무를 전담하는 임지연 외에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현장에 녹아서 활약할 틈이 거의 없다. <바닷길 선발대>에서 막내의 생기를 보여준 고아성은 <간이역>에서 예능이 낯선 수줍은 후배 배우가 되어 있었다.

힐링 콘텐츠들이 특정한 장소를 정하고 울타리를 쳐서 시공간을 가두는 이유는 일상과의 괴리를 더욱 선명히 하려는 것도 있지만, 적응하고 정을 쌓는 과정을 관찰해 사람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힐링 등의 정서는 그로부터 비롯되는 따라오는 흐름이다. 힐링, 정과 소통, 대리만족의 즐거움은 단순히 자연스러움만으로 발생하는 정서가 아니다. 그런데, <간이역>은 전개되는 하루가 직업 체험에 가깝다보니 장소만 달라질 뿐 볼거리는 반복된다. 기차에 대한 추억부터 시작해 팀워크가 갖춰지기도 전에 매번 게스트들이 등장하고, 주변 명소 둘러보고, 후한 인심과 토속 음식 접하고, 배우들끼리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는 엇비슷한 빌드업의 도돌이표다.

모두가 감탄하는 시골 풍광에 대한 일관된 리액션이나 균열이 날 틈이 안 보이는 각 잡힌 출연진의 관계, 연예인을 걸지 않고 오롯이 현지의 정취를 담아낸 장면들은 거의 없다보니 로망이나 대리만족보다는 방송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리얼리티가 잘 살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빠져들 이야기가 없다보니 보는 입장에서 몰입할 지점을 발견하기가 꽤나 힘들다. 손현주에 대한 관심, 따스한 분위기, 왠지 모를 그리움과 아련함이 잠시 삶에 쉼표를 찍어준다. 작은 존재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뜻깊은 콘텐츠기도 하지만, 예능다운 재미를 생산하는 볼거리와 매커니즘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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