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 투 헤븐’, 감동과 따뜻함에 목마른 분들이라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고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모자를 벗고 경건하게 묵념을 올린다. 그건 죽은 고인의 마지막 물건들을 정리해주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와 그의 아버지 정우(지진희)가 늘 일하기 전 하는 루틴이다. 묵념을 한 후 그루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고인의 유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한다. 그 음악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또 애도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를 담아낸다. 그런데 이들은 단지 고인의 물건들을 치워주는 일로 그 일을 마무리하지 않는다. 그 물건들에 담겨져 있는 고인의 마음을 읽는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마음을 유족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의 진정한 마무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은 유품정리사라는 특별한 직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던 김새별 유품정리사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직업은 ‘죽음’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드라마 소재로서는 다소 무거울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고인들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감정 몰입하게 됨으로써 의도치 않게 신파적인 늪에 빠질 수도 있는 소재다. 매체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런 부분을 윤지련 작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속 내용들 속에서 우리가 실제 현실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특정사건이나 인물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라며 그 분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브 투 헤븐>은 허구적 장치들을 통해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객관화하고, 먼저 울어버리기보다는 한 발 물러나 눈물을 머금음으로서 그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남기는 방식들을 채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그루와 상구(이제훈)라는 인물의 창출이다. 이 두 인물은 ‘유품정리사’라는 일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둘 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는 그루는 마치 AI가 이야기하듯 “안됩니다-”를 습관적으로 쓰며 모든 일들이 정돈된 상태로 되어야 하는 걸 강조하고 또 그걸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고인의 유품에 담긴 마음들을 유족들에게 전하면서도 그 어떤 감정을 먼저 담지는 않는다. 일종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고, 여기에 천재적인 기억력까지 갖고 있어 고인의 마음을 세세하면서도 최대한 담담하게 유족들에게 전해준다. 그루의 이런 담담한 전달은 그래서 온전히 그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옮겨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상구 역시 마찬가지다. 감옥까지 갔다가 출소한 이 스트리트 파이터는 짐짓 고인의 죽음 따위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는 거친 인물로 어쩌다 그루의 후견인이 되어 그 일을 함께 하게 된다. 그루의 아버지인 정우가 사망하면서 그를 후견인으로 세운 것. 그래서 처음 이 일을 할 때 그는 결코 진지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죽음의 현장을 견뎌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루와 점점 가까워지고 자신과 정우 사이에 놓여 있던 오랜 앙금과 오해들이 풀려나면서 그 일을 대하는 모습도 점점 그루와 비슷해진다. 타인의 죽음을 정리하고 전하는 인물들로서 그루와 상구라는 캐릭터는 이를 보다 객관화하고 감정을 정제하는 인물들로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루는 드라마의 후반부에 이르면 정우가 상구에게 남긴 그의 ‘마음’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어려서 자신을 버리고 갔다 여겼고, 그래서 비뚤어졌지만 정우가 상구를 찾아오지 못했던 이유와 그 후 그가 얼마나 상구를 애타게 찾아왔는가가 그루라는 인물을 통해 상구에게 전해지는 것. 이런 이야기 설정은 고인의 유품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전해준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와 공진하며 큰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누구나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혹은 무심했던 사람도 결국은 다 죽는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 허망하지 않은 건, 거기서 그 사람의 삶의 흔적들을 읽어내려는 남은 이들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고, 거기서 그 흔적을 통해 남아있는 이들에게 전한 고인의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브 투 헤븐>은 유품정리사라는 특별한 직업을 소재로 가져와 그 저마다의 마음들이 어떠했는가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드라마가 특히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울리는 건,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은 채 사라진 많은 이들에 대한 헌사를 담고 있어서다. 그건 ‘당신은 소중하다’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축복의 메시지이기도 하니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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