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보는 시선이 달라졌는데 여전한 시대착오 중계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개회식 중계부터 ‘국가적 망신’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개회식에 입장하는 선수단을 소개하는 중계에서 그 나라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진행 중인 상처로 남아 있는 원전 참사 사진을 띄우고, 폭동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붙였다. 군부 쿠데타, 내전 등등 이게 과연 올림픽 개회식 선수단을 소개하는 장면이 맞나 싶은 ‘선 넘은’ 중계 장면이 이어졌다.
MBC가 워낙 센 무개념 중계로 전면에서 두드려 맞았고 사장까지 나서 공개사과를 했지만, 이번 올림픽의 무개념 중계는 MBC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SBS, KBS도 등장하는 나라를 소개하면서 비슷한 멘트들이 설명을 덧붙여진 건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총격 피살” 같은 설명(SBS)이 있었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던” 같은 멘트(KBS)도 있었다. 결국 올림픽 중계를 한 지상파 3사가 모두 시대착오적인 중계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금메달과 순위에 집착하는 중계 역시 시대착오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남자축구 예선전 루마니아전의 MBC 축구중계에서 상대팀의 자책골을 조롱하는 듯한 자막을 붙인 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은 유도 경기 중계에서도 벌어졌다. 안창림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한 직후 MBC 캐스터가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이라고 말했던 것.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4등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줬던 대중들을 떠올려 보면 지상파의 올림픽 중계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에 오른 우상혁은 “행복한 밤”이라며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시청자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남자 스프링보드 3m에서 한국 다이빙 최고 성적을 거운 우하람 역시 “올림픽 4등 자체가 영광”이라고 했고, 남자 자유형 200m에서 5위를 기록한 황선우 역시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올림픽이 결국 국가스포츠 제전이라는 특징이 있어 국가 간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중계도 어느 정도의 편파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대중들이 중계를 보는 관점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국가 간의 대결이긴 해도 상대국에 대한 예우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고, 금메달에 집착하는 경쟁적인 분위기보다는 개개인이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자국만이 아니라 타국의 선수라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번 올림픽 중계에 그토록 많은 비판이 쏟아진 건 이런 대중들의 앞선 ‘스포츠 감수성’을 여전히 과거의 시대착오적 중계가 따라오지 못한데서 생겨난 일이다.
올림픽 중계 때마다 지적됐던 젠더 감수성 없는 중계 역시 질타를 받았다. 지난 리우 올림픽 중계에서도 나이, 외모 등을 거론하는 부적절한 중계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이번 올림픽 중계도 문제는 여전했다. ‘얼음공주’, ‘태극낭자’, ‘여궁사’, ‘여우 같다’ 같은 표현들이 중계에 등장했다. 이런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중계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건 대중들이었다. 굳이 젠더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너무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낸 것.
또 지상파 3사가 올림픽 중계를 하고 있지만, 특정 인기 종목에 집중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비인기종목을 홀대하는 차별도 여전했다. 특히 축구, 야구, 배구가 모두 비슷한 시간에 중계됐던 상황에 지상파 3사가 모두 축구, 야구에만 집중함으로서 배구 경기 중계를 보기가 힘들었던 사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겹치기 편성을 하지 말라는 방통위의 권고는 무시되었다. 그나마 배구는 이번 올림픽에서의 선전으로 주목받았지만 타 비인기종목들은 아예 방송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도 벌어졌다.
올림픽이 끝나도 방송가는 한동안 올림픽 스타들로 북적일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예능 프로그램들의 섭외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양궁3관왕의 안산 선수, 펜싱 어벤져스, 양궁 김제덕, 수영 황선우, 탁구 신유빈 등등이 예능에서 올림픽의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래도 과거와는 달리 금메달을 딴 선수들에만 집중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몇몇 올림픽 스타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일이 자칫 비인기종목에서 땀을 흘린 선수들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예능이라도 지금 시대에 맞는 방송을 보여주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