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개념 올림픽 중계와 지상파 전체의 위기
예능화, 경쟁이 불러온 지상파의 추락이 그 원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올림픽 개회식에서 참가국을 폄하하는 무개념 방송은 도대체 어떻게 버젓이 나올 수 있었던 걸까.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에서 MBC는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며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넣고, 엘살바도르 선수단 소개에는 비트코인을, 아이티 소개에는 폭동사진을 게재하며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붙였다.

사태는 일파만파 후폭풍을 불러왔다. ‘국가적인 망신’이라는 비판들이 쏟아졌고 미국 뉴욕타임스, CNN,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도 비판 기사들을 쏟아냈다. 결국 박성제 MBC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사태 경위에 대한 박 사장의 말은 어딘지 찜찜함을 남겼다. 경위를 파악해 보니 “특정 몇몇 제작진을 징계하는 것에서 그칠 수 없는,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도 반드시 묻겠다”고 했지만 ‘시스템의 문제’라는 표현은 애매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일단락되지 않았다. 박 사장의 사과가 있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또 사태가 불거진 것이다. 이번엔 한국과 루마니아 간의 경기 중계 광고 중에 들어간 자막이 문제가 됐다. 자책골을 넣은 루마니아 마리우스 마린 선수를 지목해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는 자막을 화면 우측 상단에 게재한 것. 시청자들은 이 자막이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상대팀 조롱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MBC의 무개념 올림픽 중계가 전면에서 뭇매를 맞고 있지만, 이런 무개념 중계는 MBC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SBS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간호사 복서’ 스바사 아리사가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는 퍼포먼스를 할 때 “홈트레이닝 하는 모습인데 홈쇼핑하는 느낌도 나네요”라고 중계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KBS는 여자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과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리안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상대 선수가 나이가 많다(58세)는 이유로 “탁구장 가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오시는 숨은 동네 고수 같다”는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백전노장을 ‘동네 고수’라 표현한 것은 물론이고 능숙한 경기 운영에 대해서는 “여우 같다”는 부적절한 표현도 나왔다.

경중의 차이는 있다고 해도 지상파 3사가 올림픽 중계에 있어서 ‘시대착오적’이고 ‘무개념’인 중계를 앞 다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에서 읽히는 건 현 지상파들의 추락과 그로 인해 가열되고 있는 자극 경쟁이다. 이미 방송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능화 경향’은 어떻게든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는 지상파들의 안간힘에서 비롯된다. 교양도 시사도 예능화하고 있고 심지어 선거방송에서도 예능화 경향은 두드러진다. 지상파 3사가 같은 소재로 방송을 하게 됐을 때 이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물론 올림픽 중계에서 자국 팀을 응원하는 어느 정도의 편파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자국 팀 응원을 넘어서 상대팀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식으로까지 나가는 건 선을 넘는 일이다. 결국 논란이 벌어져서야 그것이 문제였다는 걸 인식하는 지상파 3사에서 과거 이 플랫폼이 지위를 누리는 전제였던 ‘공영성’에 대한 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OTT가 등장하고,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시청자들을 끌어가기 시작하면서 지상파들은 ‘공영성’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것보다는 치열한 경쟁이 우선이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 할 태세다. 19금과 자극을 앞세운 콘텐츠들도 지상파들에 전진 배치된 지 오래고, 어떤 소재의 콘텐츠가 잘 됐다면 종편이고 케이블이고 상관없이 ‘따라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니 지상파의 신뢰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MBC는 누적된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투자를 줄이고 줄이다 보니 방송국이 케이블 채널 같은 위상으로 추락했다. 투자 규모를 줄여 가장 위축된 분야는 드라마다. 과거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지난 몇 년 간 MBC 드라마의 위상은 거의 바닥이나 다름없다. KBS는 그토록 방만한 경영에 대한 지적들이 쏟아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채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앞뒤가 바뀐 요구가 받아들여질 리 만무다.

SBS는 상업방송으로서 MBC나 KBS보다 기민하게 변화에 대처하고 있지만, ‘자극성’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드라마에서 19금 콘텐츠를 전면에 배치하고 <펜트하우스> 같은 개연성은 부족하고 자극만 키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조선구마사>는 역사왜곡 문제가 불거지면서 2회 만에 방송이 취소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의 무개념 중계방송의 문제는 단지 이 방송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거기에는 현 지상파가 처한 위기가 보인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는 걸 최우선으로 삼고, 모든 걸 예능화하다 보니 지상파 최대의 무기였던 공영성과 신뢰가 추락했다. 과거 올림픽 같은 국가적 이벤트에서 특히 지상파의 위상이 높아졌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번 사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이를 검증하고 심의해야할 방심위조차 구성이 온전히 되지 않아 6개월째 휴업 중이라는 사실 역시 상징적이다.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제동을 걸어주는 이조차 없는 형국이다.

지상파 3사는 이번 올림픽 무개념 중계방송 사태를 그저 해프닝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건 현재 지상파가 처한 위기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성과 신뢰의 회복이 아니라면 더 이상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위상은 유지될 수 없다. 그래도 지상파의 위상을 가져가고 싶다면 경쟁이 아니라 신뢰 회복을 위한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S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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