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 여성 댄스들 조명 반갑지만 남는 몇 가지 아쉬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언 프리티 랩스타>의 댄스 배틀 버전인가. “디스 이즈 컴피티션”이라고 제시가 도발했던 그런 장면들이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는 넘쳐난다. 예쁜 척, 착한 척 같은 건 집어 치우라는 투로 보무도 당당하게 이 스트릿 파이트 클럽에 입성한 여성 댄스 크루들은 방송에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상대 크루를 비하하고, 도발하고, 기분 나쁜 심기를 대놓고 드러냈다. 한 마디로 우린 급이 다르고 세다는 걸 이들은 대부분 보여주려 애썼다.
댄스 크루 8개 팀은 훅, 라치카, 홀리뱅, 코카N버터, 프라우드먼, 웨이비, 원트, YGX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이 안무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열거하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실력자들이다. 주로 아이돌 뒤에서 춤을 춰 주목받진 못했지만, 그들 중에는 이미 워낙 유명해져 스타인 댄서들도 존재한다.

훅의 아이키야 MBC <놀면 뭐하니?>의 환불원정대의 안무를 한데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ITZY, 트와이스 같은 걸그룹 안무가 리정이나, 청하의 거의 모든 곡을 안무한 가비, 카이의 댄서로 춤 실력은 물론 독보적인 외모로 주목받는 노제, 박재범과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허니제이, 그리고 그와 함께 걸스 힙합 댄스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리헤이, 세계적인 비걸 예리, 댄서들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모니카와 레전드 왁커 립제이 등등.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크루와 그 멤버들은 한 마디로 독보적인 실력자들이다.
그래서 일단 이렇게 아이돌 뒤편에 서 있던 댄스 크루의 실력자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세워줬다는 건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이 크루의 명예를 걸고 자존심 대결을 한다는 콘셉트 역시 나쁘지 않다. 그것은 실제로 스트릿 신의 댄스 배틀의 형태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오디션이 갖는 경쟁적인 분위기를 통해 의외의 강렬한 무대들이 가능하다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 건 너무 과한 파이터 콘셉트를 강조하고, 그래서 다분히 연출된 대결 분위기를 이끌어내다 보니 정작 댄스 자체의 실력 보다 어떻게든 이기려는 승패에 집중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시작부터 대놓고 ‘약육강식, 적자생존, 정복과 굴욕’ 같은 자극적인 경쟁의 단어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적어도 업계에서 그간 쌓아온 경력들에 대한 예우 같은 건 접어 버리고 ‘여긴 전쟁터’라는 걸 내세우는 대목은 보기에 따라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러한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끌어와 무대 위에서 맞붙는 순간의 화력으로 활용한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연출의 콘셉트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결에 나서는 크루 댄서들이 여기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도 무대를 더 다이내믹하게 하기 위한 연출의 묘라고 공감할 수도 있을 게다. ‘약자 지목 배틀’은 그래서 누군가의 지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쁠 수 있지만, 그것이 억울하거나 화가 나면 무대 위에서 실력으로 증명하면 된다는 치고받는 타격감을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즈원 출신 이채연이 아이돌이라는 사실 때문에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점이나, 가비가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빌런 같은 이미지로 아이키를 도발하는 장면은 연출이라고 해도 너무 과해 정작 댄스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본말의 전도’를 만든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이러한 경쟁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심사진의 구성과 심사 방식의 허술함이다. 보아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실력자이고 한상훈 안무가 역시 심사할만한 위치에 있다 여겨지지만 NCT 태용이 심사진에 참여한 점은 고개가 갸웃해진다. 게다가 이들의 심사는 구체적인 댄스의 내용들을 언급하며 어떤 기준에 근거해 한다기보다는 분위기에 더 휘둘리는 느낌을 준다. 댄스 배틀에서 에너지가 중요하고 무대를 누가 더 압도하느냐가 중요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것이 방송에 나갈 때는 승패에 대한 합당하고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작정한 듯 준비하고 나온 가비와 아이키의 대결은 그래서 ‘환불원정대’ 안무 채택 경쟁을 두고 있었던 감정을 무대로 끌고 와 경쟁적인 분위기의 댄스 배틀을 연출했지만, 어째서 가비가 승자가 됐는지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가비는 바지를 벗고 무대 계단을 뛰어 오르는 등 과감하고 도발적인 행동들을 했지만 그것이 댄스 실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지점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때론 시청자들이 잘 모르는 댄스의 깊은 세계(기술적인 부분 같은)를 알려주는 게 사실 심사진들의 역할이다. 그저 현장 상황의 분위기에 따라 승패를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삼거나, 배틀 이후에 상대를 예우하는 모습 또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상대하는 꺼릴 정도의 비보잉 실력자인 비걸 예리와 대결하면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마저 댄스로 승화해내는 제트썬의 모습은 댄스배틀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또 댄서들의 선생님이라 불리는 모니카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나, 피넛이 한 번도 이긴 적 없다는 립제이와 멋진 왁킹 대결을 펼치고 결국 또 지게 됐지만 그 대결 무대 자체가 마치 둘이 짠 퍼포먼스처럼 연출되며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 또한 백미가 아닐 수 없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센 언니들 콘셉트를 연출 포인트로 삼은 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대결하고 그로 인해 겪는 감정들이 다음 무대의 에너지로 이어지는 것도 충분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승패를 결정짓고, 어찌 보면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스트릿 댄스의 세계를 좀 더 깊게 알려줄 수 있는 심사진들의 역할은 아쉽다. 이러한 깊이적인 부분을 채워주지 못하게 되면, 자극적인 연출만 남게 될까 우려된다. 이 실력자들이 온전히 그 춤 실력을 제대로 시청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연출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