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될 가해와 방관의 세계 속으로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시즌 1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춘물이지만 싱그럽지 않고, 수사물이지만 신나지 않으며, 형사물이지만 통쾌하지 않다. 군대에서 달아난 탈영병을 추적해 무사히 데리고 돌아와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무이탈 체포조 헌병 ‘D.P.’(Deserter Pursuit)들의 활약을 그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보고 나면 입안이 씁쓸해지는 드라마다. 동명의 원작을 창조한 만화가 김보통이 공동 각본가로 참여한 이 6부작 드라마는 시종일관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를 보여준다. 장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실무자를 갈구고, 선임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후임을 갈군다.

힘과 위계질서로 지탱되는 이 폭력의 굴레는 군대 바깥에서도 여전해서,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을 갈구고 철거반원들은 철거예정지역 주민들을 갈군다. 속된 표현인 ‘갈구다’라는 말 외에는 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이 불합리한 폭력의 굴레 속에서, 누군가는 탈주하고 누군가는 탈주자를 찾기 위해 달린다. 문제의 근본 원인인 폭력과 불합리를 바꾸는 대신, 피해자의 뒤를 쫓아야 하는 순간이 더 잦은 이 보직의 이야기가 싱그럽거나 신날 리 없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은 이 악몽과도 같은 세계를 어떻게 보았을까? 군필자인 이승한 평론가를 제외하더라도, 정석희 평론가와 남지우 평론가 또한 아들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을 군에 보내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무사생환을 바랐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제 욕심 차리기에만 급급한 것도 속 터지고. 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명백한 현실이라는 것이 잔인하다”며 6부작이 순식간에 흘러갔다고 평했다.

남지우 평론가는 “군대 같은 곳도 이젠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뒤 마지막 순간에 그 믿음을 단칼에 무너뜨리며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 <D.P.>의 스토리텔링 구조에 주목했다. “드라마의 2014년은 현실의 2014년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라는 평이다.

드라마를 보고 자신의 군생활 시절 악몽을 떨치지 못했다는 이승한 평론가는 작품이 “이 모든 가혹행위와 내리갈굼의 전통이 새로운 이야기도,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왜 그 짓거리가 계속 반복되도록 방치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평했다.

◆ 지금도, 어디선가는.

먹먹했다. 무심한 듯 던진 마지막 장면이 말해준 것처럼 이게 끝이 아니어서, 지금도 어디선가는 벌어지고 있을 현재 진행형 이야기여서. 자신보다 약한 자를 귀신 같이 알아채는 동물적 본능,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비단 군대만의 일이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러나 피할 곳 없어 두려움에 떠는,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지내는 청춘들이 너무나 딱하지 않은가.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심하고 무서웠다. 한때 날 세우며 예의 주시하던 군대 내 가혹행위에 어느새 이토록 무심해진 내 자신이. 아들이 군복무 중이던 십여 년 전만 해도 ‘군대 폭행’을 매일 같이 검색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젠 내 일이 아니란 이유로 잊고 살았다. <D.P.>를 보기 전까지는 흘러가는 뉴스 한 꼭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혀를 차며 욕을 한 마디씩 보태긴 했어도 이처럼 처절히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으니까.

군무이탈 체포조 ‘D.P.’는 내가 아는 얘기가 아니다. 들어 본 기억도 없다. 뉴스 혹은 영화나 드라마에 스치듯이 나오는 인물들. 그래서 탈영병 잡으러 오는 헌병은 막연히 채널A <강철부대> 출연자들처럼 기골장대하고 매서운 눈매를 지녔을 줄 알았다. 요즘 말로 ‘애기애기’한 청년들이 임무랍시고 동료들을 잡으러 다니는 것도 안타깝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제 욕심 차리기에만 급급한 것도 속 터지고. 무엇보다 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명백한 현실이라는 것이 잔인하다. 군인 잡는 군인 ‘D.P.’조 준호와 호열 역할의 정해인, 구교환이 주인공이지만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실존 인물들 모양 살아 움직인다. 특히 악역들 때문에 나쁜 생각을 몇 차례나 했네 그려. 6부작 290분, 길다 하면 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피해자였고 방관자였으며 가해자였던 모든 이들에게

군 시절 내 이웃 부대 사람들은, 신병이 오면 40여명에 달하는 선임들의 이름과 계급을 그 자리에서 달달 외우게 시키는 악습을 ‘부대의 전통’이랍시고 고수하곤 했다. 겁에 질린 신병이 40여명의 이름을 계급 순서대로 대번에 외우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신병은 틀릴 때마다 매고 온 군장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얼차려를 받고 연병장을 돌아야 했다. 어느 날 그 놈의 ‘전통’을 견디다 못한 신병 하나는 소원수리함에 “살려주세요”라고 적어 넣었고, 선임들 중 절반이 영창을 다녀왔다. 신병의 신원은 잘 보호되었을까? 당장 전출을 보낼 지역이 마땅치 않았는지, 신병은 소속 부대만 달라졌을 뿐 같은 막사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나마 한국군과 미군 양쪽의 통제를 받아 눈에 띄는 가혹행위를 하기 어려운 카투사 병이었으니 그 정도에서 끝난 일이었으리라.

<D.P.>는 이 끔찍하고 부조리한 군대라는 세계를 냉정한 눈빛으로 응시한다. 부대 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사병은 탈영을 저지르지만, 사병의 안녕보다는 제 진급을 먼저 걱정하는 장교들은 가능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길 원한다. 가혹행위를 저지른 선임들이 제대로 처벌받으리라는 보장 같은 건 없고, 스트레스가 위에서 아래로 전가되어도 아무런 탈이 없는 ‘내리갈굼’의 논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다시 무감하게 가혹행위를 저지른다. 이유야 가져다 붙이면 이유지. 코를 심하게 골아서, 애니메이션이나 보는 오타쿠여서, 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사실상 아무 이유 없는 폭력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제 알량한 권력에 취하는 선임들과, 못 본 척 모르는 척 방관하고 넘어가는 간부들 사이에서, 사병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D.P.>가 시즌 1을 통해 건네는 질문은 선명하다. 이 모든 가혹행위와 내리갈굼의 전통이 새로운 이야기도,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왜 그 짓거리가 계속 반복되도록 방치했는가?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병들의 역사를 덤덤한 어조로 들려준 <D.P.>는, 놀란 표정으로 작품을 접하는 이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다들 방관했으면서.” 이제, 작품을 목격한 우리가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할 차례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참혹한 엔딩의 이유

최종화(6화 ‘방관자들’)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하고 난 후, 우리나라에 있는 군인 사형수들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현재 국군교도소에 수감된 네 명의 사형수는 모두 총기난사범이다. 이들은 각각 1996년, 2005년, 2011년, 그리고 2014년에 범행을 일으켜 적게는 3명, 많게는 8명의 군인을 살해했다. 앞선 세 사람은 부대 안에서, 가장 최근의 한 사람은 탈영해 일을 벌였다는 차이가 있다.

군인 범죄자들이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으면 군인 신분을 상실하며 민간교도소로 옮겨지는 것과는 달리, 사형을 선고받으면 ‘형이 집행되기까지’ 군교도소에 머물러야 한다. 이들에겐 교수형(형법 제66조)이 아닌 총살형(군형법 제3조)이 집행되어야 하고, 총살을 위한 시설을 갖춘 장소로는 군교도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나, ‘군인’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끝에 가 ‘군인’으로 죽게 될 사람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바로 이 ‘군 사형수’가 탄생했던 몇 년 전 그해, ‘군대 가서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된다’는 끔찍한 말이 농담이자 삶의 지혜가 되어버렸던 계절, 2014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D.P.>는 누리끼리한 노스탤지어의 색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씨스타의 ‘Touch my body’가 흘러나오고, 출시와 함께 메가히트를 기록한 ‘허니버터칩’은 슈퍼마다 품절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TV에 나와 전우의 인격과 군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을 만들자 연설한다. 군탈 담당관 범구(김성균)를 만나 군무이탈 체포조가 된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은 자신들이 “지구를 구하”는 아니, “탈영범을 잡”는 아니, “사람을 살리”는 일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는다.

콤비의 추적과 조사가 이어지고 탈영병과의 만남과 체포가 진행되며, D.P.의 일은 자살충동자를 구하는 일이 되고, 폭력과 부조리의 진상을 폭로하는 일이 되고, 결국은 조금씩, 또 조금씩 “군대를 바꾸는” 일이 된다. 특출나게 선하지는 않더라도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두 사람이 D.P.로 활약하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군대 같은 곳도 이젠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쌓여간다. D.P.는 탈영병을 데리고 반드시, 그리고 무사히 돌아온다는 믿음과 함께.

하지만 <D.P.>는 최종화에 이르러 이 순수한 믿음을 실현해주는 대신 그것을 꼬꾸라뜨리기로 선택한다. 드라마의 2014년은 현실의 2014년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당한 가혹 행위를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던 조 일병의 선의도, 부하들이 사람을 쏴 죽이는 경험을 하지 않게 막으려던 박 중사의 항명도, 가해자와 방관자를 깡그리 조사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한 상병의 답 없는 낙천도, 대한민국 군대가 내놓은 참담한 결말들을 바꿀 순 없었다. 주인공 준호의 전역은 아직도 500일이 넘게 남았다. (물론 나는 두 번째 시즌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시즌, 그 곳에서도 대한민국의 군인은 다치고, 자살하고, 끝내 총기를 난사해 군인을 죽이는 사형수가 되어있을 것만 같다. 강제 징병이라는 지금 당장의 현실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영상=넷플릭스.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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