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너무 어둡지만 그 쓸쓸함에 공감하는 분들에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호흡기에 의지해 더러운 반 평짜리 침대를 자신의 지구 삼아 누워만 지내며 온종일 아들만을 기다렸던 아버지가 마지막 안간힘을 써서 한 일은 스스로의 호흡기를 떼는 일이었다. 그 반 평짜리 침대 위에 앉아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어린 강재(류준열)의 얼굴은 굳어있다. 한 인간의 쓸쓸한 죽음을 아버지로부터 알게 된 강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혼자가 된 강재의 엄마 미선(강지은)은 장규(이서환)와 함께 반지하방에서 마치 그 곳에 유폐된 듯 살아간다. 반지하방의 높은 창을 두드리며, 생활비를 요구하며 찾아오는 아들 강재를 볼 때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이지만 그는 저 반 평짜리 침대에서 6년을 버티다 가버린 남편처럼 그 작은 반지하를 지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 같다. 강재는 아버지에 이어 엄마에게서도 여전히 그 쓸쓸한 삶을 보고 있다. 그래서 엄마를 찾을 때면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우유를 사다 준다.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은 어둡다. 너무 쓸쓸하다. 강재의 무표정은 그래서 무감함이 아니라 조금만 누가 건드리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모습을 애써 감추기 위한 안간힘처럼 보인다. 그는 ‘역할대행서비스’를 한다며 세상과 애써 선을 긋고 저편 누군가가 겪고 있는 상처를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말하지만, 그 말 또한 속내를 감추기 위해 애써 내놓는 말처럼 보인다.

그는 부정(전도연)이 비상계단에서 부당함을 토로하며 질러대는 절규를 지나치지 못하고, 옥상으로 올라간 그가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따라 올라가는 인물이다. 물론 그의 앞에서는 툭툭 뭐 하러 죽냐는 식으로 말을 던지고,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넨 일을 괜히 마음이 훅해서 “착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인물. 아는 형의 자살과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쓸쓸한 죽음에 장례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그래서 얼만데?’ 라고 묻는 사람. 그게 강재다.

그는 ‘쓸쓸한 인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아버지의 반 평짜리 침대, 엄마의 반지하방, 아는 형의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며 아버지 앞에서 눈물 흘리는 부정은 쉬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쓸쓸한 인간이다. 버스 안에서 눈물 흘리는 부정에게 퉁명스럽게 손수건을 건넨 건 그냥 “착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인간실격>에는 사람이 살아가며 갖게 되는 장례, 혼례, 생일 같은 의례들이 등장한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표징하는 그런 의례들은 어찌 보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에 해당한다. 가난하고 비천하다고 해도 누구나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의례들. 하지만 그 의례 속에서 부정과 강재는 너무나 쓸쓸한 ‘투명인간’으로서의 삶을 보거나 혹은 스스로가 그런 삶을 겪는다.

처음 가사도우미로 갔던 집에서 자해를 해 쓰러진 집주인 때문에 ‘임시보호자’가 되어 병원까지 동행해준 부정은 진짜 보호자가 오자 투명인간처럼 존재가 지워진다. 그의 선의에 돌아온 보답은 싸구려 케이크 하나다. 강재와 친구들이 결혼식장에 간 건 돈을 받고 친구인 척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식장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강재의 생일은 쓸쓸하다. 엄마를 빼고는 아무도 그의 생일을 알지도 챙겨주지도 않는다. 그런 그에게 우연찮게 복도에서 만난 부정의 아버지 창숙(박인환)이 부정이 상으로 받아왔다는 그 싸구려 케이크를 이웃으로 알고 지내자며 잘라 나눠준다. 자해한 이를 챙겨준 선의로 싸구려 케이크를 받아오는 일도 쓸쓸하지만, 이웃이라며 나눠준 그 케이크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생일날 꾸역꾸역 챙겨먹은 강재는 더 쓸쓸하다. 생일날 미역국은 먹었냐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는 엄마에게 그 케이크 사진을 찍어 보내는 강재다.

어렸을 때 친구 딱이(유수빈)의 생일날 빈손으로 간 게 미안해 자기도 같은 날이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강재였다. 그 후로 친구들에게 강재의 생일은 딱이와 같은 날이 됐다. 선물은 계속 서로 퉁치는 거고. 강재의 진짜 생일을 아는 건 그래서 엄마뿐이다. 케이크 사진을 보내놓고도 엄마가 안타까워 할 걸 알고 찾아온 강재는 컵밥으로 내놓은 미역국을 일주일 지난 단무지와 먹으며 천연덕스럽게 수다를 떤다.

<인간실격>은 생일이나 결혼, 장례 같은 최소한 그날만큼은 주인공이 되는 순간조차 예우 받지 못하는 삶들을 비춘다. 대필작가로 일하다 팽 당해버린 부정이나, 역할 대행 서비스를 하며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는 강재가 그렇다. 그래서 지독히도 쓸쓸하고 어둡다. 드라마로서 이런 어두움은 결코 대중적일 수 없다. 드라마는 어쩌면 그 지독히도 쓸쓸하고 어두운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공간으로 기대되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어둡지만 그 쓸쓸함이 주는 공감도 적지 않다. 저들은 저렇게 잘만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힘든가. 그 누구보다 노력하며 살고 있는데 왜 나는 투명인간처럼 치부될까. 자신이 쓴 글로 누군가는 TV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매일 밤 성실하게 폐지를 주우러 다니고,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일을 하고, 마트에서 말도 안되는 불만에도 고개를 조아리며 애써 웃고 있는데 왜 아무도 이들을 ‘인간’으로 바라보며 예우하지 않을까.

그 지독한 쓸쓸함에 대한 그 공감대가 <인간실격>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 어두운 지점에 숨겨진 누군가를 자꾸만 찾아보게 만든다. 그저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며 강재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가 외면했을 그 누군가를. 그리고 그 외면했던 그 누군가는 어쩌면 나 자신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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