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헤중’이 패션을 소재로 삶과 사랑을 은유하는 법

[엔터미디어=정덕현] ‘유행은 지나간다. 그러나 스타일은 영원하다. 내가 바로 스타일이다.’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1회는 코코 샤넬의 유명한 말을 부제처럼 붙여 놓았다. 2회는 ‘돈이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어디에서 쇼핑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미국의 작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인용했다. 3회는 ‘가식은 옷을 입지만, 진실은 발가벗기를 좋아한다’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을 인용했다.

각각의 회차마다 들어가 있는 이 명언들은 모두 이 드라마가 소재로 가져온 패션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패션과 연관된 말들이 명언이 된 건, 그것이 삶을 은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코 샤넬의 말은 변화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나 자신의 삶은 유일하다는 것처럼 읽히고,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은 중요한건 돈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라는 걸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또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은 덕지덕지 붙여 놓은 가식보다 차라리 치장 없는 진실이 삶에 더 중요하다는 말일 게다.

굳이 이런 문구들을 가져온 건 그러나 이 드라마가 단지 패션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하영은(송혜교)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이들 문구들의 메시지와는 연관되어 있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영은은 시쳇말로 ‘환승연애’를 하고 있다. 그 ‘환승연애’는 무려 10년 전부터 지금껏 이어지는 중이다. 10년 전 파리에서 그 힘겨울 때 힘과 위로가 되어주었던 사람. 윤수완(신동욱)은 사고로 사망했지만 하영은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갑자기 떠나버렸다 생각한다.

그 상처는 너무 깊어 그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사랑이란 ‘감정놀음’이고 다시 빠지기 두려운 ‘무모한 짓’이다. 물론 ‘술김에 몸이 끌려’ 하는 육체적 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만 그는 상대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는다. 관계를 인연으로 사랑으로 이어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윤재국(장기용)이 다가와 마음의 문을 열려 한다. 하지만 하영은은 여전히 윤수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형 윤수완과 어떤 관계냐고 묻는 윤재국의 질문에 그는 “지금, 헤어지는 중이에요”라고 답한다. 무려 10년 째.

윤수완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하영은이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윤재국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가 사랑을 믿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그 이유가 이해된다. 형이 갑작스럽게 사라짐으로써 그가 느꼈을 비참함과 암담함을 공감하는 것.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그는 용기를 내서 다시 하영은의 집 문을 두드린다. 그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는 하영은이지만, 윤재국은 계속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고 결국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키스하지만 하영은은 말한다. “감정놀음으로 내가 가진 거 내가 이룬 거 잃고 싶지 않아요. 이미 충분히 겪어봤으니까. 경험은 용기를 주는 게 아니라 겁을 주거든. 나는 지금 네가 겁이 나.”

형의 죽음을 알게 되고 다시 만나게 된 그의 동생 윤재국과의 사랑. 하영은은 10년 째 헤어지며 여전히 하지 못하게 된 그 ‘환승연애’를 이번에는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마침 하영은과 그 팀이 오래도록 고생해 디자인한 옷이 그 정보가 유출되어 짝퉁들이 쏟아져 나오는 사건과 연결되어 소개된다. 그 옷들을 포기하라는 회사의 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래도 진짜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며 출시를 강행한다. 이 에피소드는 그래서 마치 윤재국과 하영은 사이에 놓인 많은 것들(가식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으며 가짜일 수도 있는)이 벌거벗겨지며 결국은 진실을 드러낼 거라는 이야기와 공명한다.

과연 하영은이 디자인한 진짜는 그 많은 짝퉁들 사이에서도 그 진면목이 알려질 수 있을까. 과연 하영은은 그 과거로 상처로 인해 생겨난 거추장스러운 가식들을 모두 벗어내고 다시 나타난 사랑 앞에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과연 우리 앞에 놓인 끝없이 헤어지는 삶의 아픔과 상처는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긍정되고 치유될 수 있을까. 그래서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어, 이 긴긴 ‘헤어지는 중’은 ‘만나는 중’으로 바뀔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