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의 눈물에 담긴 ‘풍류대장’의 진심

[엔터미디어=정덕현] “열 살에 이룬 판소리 완창 기네스 보유자라는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소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던 지난 날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JTBC ‘풍류대장’에서 듀엣으로 박효신의 ‘야생화’를 부른 김주리와 RC9의 차혜지. 그들은 노래를 시작하기 전 자신들의 이야기를 낮은 내레이션으로 담았다.
최연소 판소리 완창 보유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주리의 이야기에 이어 RC9 팀의 보컬 차혜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더한다. “소리에 매달리다 결국 목소리를 잃었던 열아홉 가을 소리꾼의 삶도 끝이라는 두려움에 긴 시간 침묵하며 버텨온 시간들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김주리와 차혜지는 “모진 추위를 뚫고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계속 노래하겠습니다.”라는 멘트로 ‘야생화’라는 곡을 일종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노래처럼 부르기 시작한다.
낮은 저음으로 담담하게 시작하던 곡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구음으로 최고조로 오르더니 폭풍 성량을 가진 듀오의 목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듣는 이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 봄이 오면 그 날에 나 피우리라’라는 가사가 이들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차혜지가 그리고 노래가 끝난 후에는 김주리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눈물을 쏟는다. 모든 걸 다 쏟아 놓은 듯한 무대. 그건 그냥 노래가 아니라 묵직한 이들의 진심 그 자체로 다가온다.
이건 아마도 ‘풍류대장’이라는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이 가진 놀라운 경험이다. 다른 장르와 달리 국악인들이 전하는 목소리에는 진심이 더욱 얹어진다. 그건 아마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국악인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심지어 누구는 오르고 누구는 떨어지는 오디션 무대에 기꺼이 오르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느껴진다. 이들은 절실하다. 그래서 어떤 시도나 도전을 통해서라도 국악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본인도 국악 출신인 송가인이 그 진심을 제대로 읽는다. “한편으로는 조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대중화를 위해서 전통 잘 하고 있는 친구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국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좀 미안한 마음이 좀 들긴 하더라고요. 잘 하는 친구들한테 왜 이렇게 힘들게 해야 되지? 왜 우리 국악을 알아달라고 왜... 사람들이 그냥 우리 것을 알아서 찾아줬으면 좋겠는데.. 두 분의 오늘 목소리 노래가 감동을 너무나 준 무대였던 것 같아요.”
이날 무대 중 또 하나의 감동적인 무대는 판소리를 하는 신동재와 정가를 하는 최여완이 선보인 듀엣무대다. 판소리와 정가는 그 색깔도 완전히 다르고, 그걸 부르는 계층도 다른 노래라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듀엣일 수 있는 이 무대에 신동재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판소리 성량이 커 자칫 정가 스타일을 가진 최여완의 목소리와 불협화음을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스토리를 가져온 듯 구한말의 의상 스타일을 입고 나온 두 사람은 판소리와 정가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스타일을 계급이 다른 남녀의 애틋한 사랑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판소리는 조선시대 서민들이 부른 노래였고 정가는 양반가에서 부른 노래였기 때문이다. 장필순과 김현철이 부른 ‘잊지 말기로 해’를 ‘춘향가’의 한 대목과 매시업해 부른 이들의 무대는 놀랍게도 그들의 해석처럼 중인과 양반 사이의 애틋한 사랑가처럼 어우러지며 듣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풍류대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송가인이 꿰뚫어본 진심처럼 어떻게든 국악을 대중들에게 알리겠다는 그 열망이 만들어낸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물론 어떤 무대는 너무 낯선 시도를 하고 있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시도에 담긴 마음들이 읽혀져 그 자체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것은 ‘풍류대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만이 가진 독특한 지점이다. 물론 점점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 국악 좋아하네”라는 자각을 하게 만드는 오디션이기도 하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