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해진 농구 인기, 예능이 되살릴 것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가을, 잃어버린 가을을 되찾은 건 LG 트윈스만이 아니다. 그간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한국 농구계에도 모처럼 따스한 가을햇살이 찾아들고 있다. <우리동네 예체능>은 이번 주부터 3개월간 농구를 제대로 배우기로 했고 <출발 드림팀>도 곧 농구를 다룰 예정이다. 농구 소재 드라마도 두 편이나 대기 중이다. 최초의 우리나라 농구대표팀을 중심으로 1930~40년대 경성의 청춘을 담은 tvN 역사 드라마 <빠스켓볼>이 다음 주 첫 방영을 앞두고 있고, 이번 주 금요일부터는 농구대잔치 세대의 90년대 청춘들을 주요 모티브로 삼은 <응답하라1994>가 시작된다. 특히 90년대를 최고의 시장가치로 만든 ‘응답하라’ 시리즈는 농구에 대한 추억과 관심을 다시 활활 지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갑자기 농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일까? 새삼스럽게 농구가 ‘다시’ 주목받는 건 한국 농구의 서글픈 현재를 말한다. 프로리그가 출범한 지 20년이 다 되가는 프로스포츠가 추억거리로 소비되는 현실의 반영이다. 지난여름 아시아농구 선수권 대회를 치르며 예년에 비해 중계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프로농구는 지난 시즌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도 평균 0.2%대의 처참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프로야구는 물론이요, 평균 0.8% 이상은 나오는 프로배구나 평균 0.3~4%대의 프로축구 K리그에도 뒤진다. 공중파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그래서 2011년에는 프로 스포츠임에도 중계권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고, 현 KBL 한선교 총재의 후보시절 공약이 전 경기 생중계였을 정도였다.

바로 이런 내리막에 놓인 현실과 영광스런 과거의 괴리가 예능 등에서 농구를 ‘먹히는 콘텐츠’로 주목하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에게 농구는 찬란했던 과거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응답하라1994>와 <예체능>에서 언급되는 오빠부대는 당시 초대형 드라마를 탄생시킬 만큼 사회적 현상이었다.

거기다 90년대 농구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미국발 NBA열기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마이클 조던과 4대 센터들이 나이키 농구화와 함께 사춘기 청소년들을 농구장으로 이끌었고, 일본에서 건너온 <슬램덩크>는 만화가 아니라 당시 청춘들의 인생 철학서였다. 니체나 그리스인 조르바는 몰라도 풋내기 강백호, 불꽃남자 정대만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농구만으로 좁혀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농구팬들은 농구경기 후기나 선수 평가를 할 때 항상 언급하는 불멸의 레퍼런스다. 하지만 지금, 극소수의 농구팬들을 제외한 대다수 대중들에게 이 모든 것은 과거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는 추억일 뿐이다.



그래서 공감이 예능의 최고 덕목이 되고, 삶의 공유가 정서적 바탕이 되며 <불후의 명곡>이나 <응답하라>시리즈처럼 과거에서 위안과 힐링을 찾게 된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추억거리로 다룰만한 옛 영광을 찾다가 농구를 발굴한 것이다. 드라마, 운동, 팬클럽, 만화책 등등 90년대 대중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농구는 오랜 친구나 옛 앨범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의 그리움과 반가움, 애틋함 등의 정서가 어우러진 최고의 복고 소재인 것이다. 게다가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지금 이때가 바로 농구의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프로농구 13-14시즌은 개막 경기를 치렀고, NBA도 개막을 2주 앞두고 있다. 시의성으로 보나 소재의 폭발 잠재력으로 보나 농구는 지금 충분히 승산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가 이례적인 케이스일 뿐 농구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는 잘나가는 스포츠다. 미국 4대 프로 스포츠리그 중 가장 적극적으로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는 NBA의 사무국의 노력이 먹히고 있다. 2013 유럽농구선수권대회 우승국인 프랑스의 토니 파커와 니콜라스 바텀을 비롯해 가솔 형제와 리키 루비오,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등이 포진한 스페인 등등 각국 국가대표팀 명단에는 스타급 NBA리거가 다수 포진해 있다. 남미의 브라질이나 마누 지노빌리와 루이스 스콜라의 황금세대를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미국 대표팀을 꺽은 적도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수준급 선수들이 NBA 대거 진출하면서 자국 농구 열기에 불을 지폈다. 게다가 만리장성 야오밍과 대만계 하버드생 출신 아시안계 연습생 신화 제레미 린의 등장은 아시아 특히 중화권에서 농구의 인기를 크게 신장시켰다.



미국 내에서도 농구의 인기는 상승세다. 지난 NBA 챔피언 결정전의 시청률은 평균 10.4%, 마지막 7차전은 15.3%를 찍으며 200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경기를 볼 수 있는 ‘리그패스’등의 여러 다양한 시청루트가 있는 상황에서 지난 4년간 꾸준히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마이클 조던 시절의 시청률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밖으로 이런 분위기가 흐르고 있을 때, 우리는 추억으로서 농구를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길고 긴 탁구의 시대 끝에 <우리 동네 예체능>이 농구로 돌아오면서 뚜껑은 열렸다. <마지막 승부>의 주제가로 시작해 농구 전성기의 주역인 우지원, 김훈, 석주일, 전희철, 신기성 등으로 구성된 ‘연고전 레전드팀’의 등장은 옛 추억의 불을 지폈고, 예체능팀 감독으로 과거 기아자동차 왕조를 이끈 최인선 감독이 등장해 반가움을 돋웠다.



탁구와 볼링, 배드민턴 붐을 일으킨 <예체능>이 농구를 선택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재미와 시청률은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스포츠 애호가나 동호회활동을 하는 시청자들에게 <예체능>이 어떤 종목을 선택하느냐마느냐는 마치 올림픽 종목 선정만큼이나 기대되는 이벤트다. 그런 그들이 사회체육 종목이 아닌 프로리그가 있는 농구를 선택한 것이니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예능이 다른 대중문화나 방송 장르와 가장 큰 차이이자 상위 개념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소개, 소통, 일상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친밀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른 어떤 콘텐츠와 장르보다 예능이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는 파워다. 따라서 일련의 쏟아지는 농구 관련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실제 농구 인기의 재점화를 한다면 대중문화의 정점이자 블랙홀이라 할 수 있는 예능의 파워를 실감하는 또 다른 역사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적인 농구붐에 우리나라도 함께할 수 있을까? 모처럼 농구에 대한 관심이 불고 있다. 농구팬들이 <예체능>등에 기대하는 것은 예능의 파워를 딛고 재도약하는 것이다. <예체능>을 시작으로 형성된 농구에 대한 관심이 레지밀러의 3점 슛이 될지, 오닐의 자유투가 될지 이제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