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가 꼬집는 거짓 가면의 사회

[엔터미디어=정덕현] “조비서는 정직한 사람인가봐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에서 안나(수지)는 남편 최지훈(김준한)의 수행비서로 온 조비서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조비서는 그렇지 않다며 자신은 “평범하다”고 말한다. 안나는 은근히 남편 최지훈을 수행하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조비서는 원래 이 일이 이런 일이고 자신에게는 소중한 기회라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지훈이 자신에게 잘 해준다고 말한다. 그건 물론 듣기 좋은 거짓말이다. 그러자 안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거봐요. 거짓말은 누구나 한다니까.”

이 짧은 시퀀스에는 안나가 자신의 거짓된 삶을 정당화하려는 심리가 담겨 있다. 그는 남편의 수행비서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자신이 버리고 숨긴 진짜 이름 유미라는 걸 알고는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듯 그를 바라본다. 자신이 과거 마레에서 현주(정은채)의 비서 역할을 했던 그 모습이 조비서에게 그대로 겹쳐진다. 그래서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하는 조비서의 모습을 보며, 거짓말은 누구나 한다는 걸 확인하려 한다. 자신이 그 처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안나는 현주의 영어 이름 안나를 훔쳤고, 그래서 가짜 학위를 꾸몄고 심지어 최지훈을 속여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이것은 안나라는 관종에 하고 싶은 건 거짓말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하는 이 괴물 같은 인물만의 문제일까. 안나는 조비서가 그런 거짓말(사실 그건 예의상 하는 거짓말일 뿐일 테지만)을 하는 것에서 자신의 거짓된 삶과 그로 인해 정체가 드러날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그 삶의 위안을 삼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누구나 그렇다. 특히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들이 갖은 모멸을 받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이 이상한 세상에서는 더더욱.

이제 거짓으로 현주 같은 삶을 얻어낸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아랫사람들에게 했던 갑질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가 수술이라고 이틀 정도 못나올 것 같다는 아주머니에게 과거 갤러리 대표였던 이작가(오만석)가 했던 말이 그대로 튀어나온다. “그게 없던 일이 돼요?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요? 그럼 수술 안할 거예요? 내가 왜? 아줌마 눈치까지 봐야 돼요. 내가 왜 그딴 것까지 신경 써야 되요?” 그런데 마침 그 때 저녁 장소로 자신을 데려 가기 위해 온 조비서가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고는 자신의 행동이 저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하는 갑질은 그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위계 시스템이 만드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이 상황은 말해준다.

그런데 거짓으로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안나는 그 곳에서 만난 이들의 거짓된 삶을 보게 된다. 남편은 외부에는 약자를 돕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10분 늦게 도착했다고 아버지뻘 되는 운전기사를 마구 폭행, 폭언하고 잘라버리는 그런 인물이다. 그의 삶은 돈과 권력으로 번쩍번쩍 빛나지만 그건 거짓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남들 보라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는 거야. 이 나라는 약자한테는 매정하고 기득권한테는 인정이 넘친다고.”

우연히 같은 건물에서 살게 된 안나를 알아보고 그 거짓된 삶을 빌미로 협박해 30억을 요구하는 현주도 보이는 모습과 실체가 다르고, 그 30억을 어떻게든 벌어들이려 안나가 만나는 사모님들은 번지르르한 차림에 그럴 듯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뒤로는 돈다발을 건네며 은근히 유력 정치인인 안나의 남편에 줄을 대려 한다. 심지어 안나를 하숙생 시절부터 후배인 줄 알고 마음으로 챙겨줬던 지원(박예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나가 남편에게 말해 지원을 보국일보 정치부로 가게 해줬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고, 안나의 삶이 거짓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지만 그는 바로 이 실체를 폭로하지 않는다. 자신 또한 정당한 길이 아닌 낙하산으로 그 자리에 와 있기 때문이다.

<안나>가 놀라운 건, <태양은 가득히>로부터 시작된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한 리메이크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는 신정아 사건으로 현실감을 주는 이야기지만, 여기에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안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인물의 거짓된 삶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놀라면서도, 그 안에서 스펙에 경도되고 줄로 움직이는, 겉과 속이 다른 거짓 가면을 쓴 사회의 섬뜩한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그 누가 감히 안나의 거짓된 삶에 거리낌 없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충격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안나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생겨나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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