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의 연인’,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징크스의 연인> 첫 회의 도입부는 굉장한 몰입감을 보여주었다. 미수(윤지혜)의 관점에서 시작되는 듯한 예언의 무녀 이야기는 꽤 웅장한 판타지의 가상 역사였기 때문이었다. 왕의 부적이었던 조선시대 예언의 무녀들. 이후 왕권이 무너지고 궁궐을 탈출하여 재벌가의 손에 들어간 그녀들의 운명.
그 운명의 계보만으로도 거대한 가상 역사 판타지의 바탕으로 썩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이어진 금화그룹 일가 선삼중(전광렬)의 스산한 분위기 역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위기는 또 반전되어 해맑은 무녀 이슬비(서현)의 등장도 괜찮았다. 집안에 갇혀 책만을 좋아하는 소녀인 동시에 사람의 손을 잡으면 예지 능력을 보여주는 신비할 설정까지. 여기에 우연히 공수광(나인우)과 만나 행복한 하루를 보낸 이야기 또한 영화 <로마의 휴일>이 떠오르는 흥미로운 로맨스였다. 이후 선삼중의 보복이 이어지는 느와르적 전개 또한 흥미로웠다. 여기에 마지막에 공수광이 이름을 바꾸고 서동시장의 상인으로 등장하는 전개까지도 깔끔했다. 그리고 서동시장 역시 등장인물의 활기가 넘치는 재미난 공간이다. 공수광이 불행한 징크스를 몰고 다니는 놈으로 찍혀 상인들의 미움을 사고 있는 설정도 은근 코믹하다.
<징크스의 연인>은 큰 그림의 판타지를 시작으로 재벌극, 로맨스, 느와르, 코믹극의 요소를 1회에서 모두 집어넣었다. 하지만 1회에서 보여준 흥미로운 전개는 중반에 이름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징크스의 연인>은 크게 재벌가에서 이슬비를 찾는 과정, 시장 상인들의 수다스러운 이런저런 에피소드, 공수광과 이슬비의 달콤하고 슬픈 로맨스를 중심으로 사건을 구성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방향이 각자 따로 놀아서 순간순간의 재미는 있을지언정 다음 이야기가 썩 궁금하지가 않다.

특히 이슬비라는 좋은 캐릭터를 가지고 만들어가는 사건 또한 빤하고 유치한 감이 있다. 일일극이나 주말극에서 볼 법한 전개가 이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거창하고 흥미로운 초반 드라마를 보면서 기대한 전개가 고작 이슬비 친부가 소주를 마시며 구질구질한 팔자타령을 늘어놓는 상황이라니?
또 우현, 황영희, 황석정, 홍석천 등 수많은 명품 조연배우들이 상인으로 등장하는 서동시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감이 있다. 주요 배경이 되지만, 주인공들의 사건과 겉도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시장 상인들의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잡아먹은 느낌이다. 차라리 주인공 커플의 로맨스와 모험을 더 메인으로 밀고 싶었다면, 과감하게 시장 이야기를 줄였어야 했다. 아니면 공수광과 이슬비 커플의 이야기를 가지고 풀 수 있는 서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시장 상인들의 수다로 분량을 채우는 걸까?

결국 지금의 <징크스의 연인>은 첫 회와 달리 웅장한 판타지 설정과 흥미로운 전개 때문에 손에 땀을 쥐고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공수광과 이슬비가 보여주는 달콤하고 안타까운 로맨스 장면 몇 분, 서브남 선민준(기도훈)이 보여주는 은은하게 매력적인 모습에 몇 분, 그리고 시장 상인을 연기하는 명품 조연배우들이 보여주는 유쾌한 연기에 미소 지으며 몇 분. 그렇게 잠깐 재미있는 장면을 잠시잠깐 보고 다시 채널을 돌리는 그런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