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수재인가’, 과한 드라마 공식에 진짜 매력 잃었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떻게 내가 낳은 아이를 죽었다 거짓말 할 수 있나. 어떻게 그동안 한 번도 내색을 안 할 수 있나.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잠깐 혼란스러웠는데 바로 정리 됐어요. 아 자기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죽인 사람. 자기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 자신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못할 짓이 없는 사람.”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에서 오수재(서현진)가 최태국(허준호)에게 쏟아내는 날선 이야기들은 그가 얼마나 악독한 빌런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동시에 이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였는가를 저도 모르게 대사에 담아 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애초 오수재라는 입지전적인 여성이 로펌이라는 차별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남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려는 분투를 담은 드라마로 여겨졌지만, 결국 이 드라마는 최태국이라는 최강 빌런을 세워두고 그 강력한 힘을 통해 끌고 가는 드라마였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아들 최주완(지승현)이 10년 전 한수그룹 한성범(이경영) 회장의 아들 안동오(박신우), 그리고 이인수(조영진) 의원 아들 이시혁(원형훈)과 함께 저지른 용서 못할 범죄를 덮은 것도 최태국이었다. 그들의 범죄로 한 여성은 강간을 당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채 그 후유증으로 지금껏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게 됐고, 다른 한 여성은 이를 목격했다는 이유로 살해 유기되었다.

더 끔찍한 건 최태국이 이 사건을 덮고, 오히려 전나정의 의붓오빠인 김동구를 범인으로 몰아 감옥에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3년 후 사건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다른 인물을 진범으로 세우고 그마저 교사해 죽였다. 김동구는 출소했지만 이름을 공찬으로 바꿔 로스쿨에 들어와 최태국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살아가게 됐다.

또 드라마 첫 회에 등장했던 박소영의 죽음 역시 자살이 아니라 최태국의 사주에 의한 살인이었다. 박소영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안 최태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또 최태국은 오수재가 자신의 아들 최주완의 아이를 가졌을 때도 모든 걸 뒤에서 조종했다. 오수재를 최주완과 결혼시키겠다는 거짓말로 미국으로 보내 아이를 낳게 했고, 사산했다 거짓말을 한 후 그 아이를 최주완이 결혼한 임승연(김윤서)이 키우게 했다. 자신이 낳은 딸이라고 세상에 속이게 하면서.

게다가 최태국은 한성범 회장의 돈과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인수 의원의 권력을 모두 제 손아귀에 쥐려는 인물이다. 오수재의 말대로 이 인물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못할 짓이 없는 사람’이다. <왜 오수재인가>라는 드라마에서 최태국이라는 최강 빌런은 그래서 절대적이다. 오수재가 그의 진실을 밝히고 넘어서려는 순간, 최태국은 보란 듯이 새로운 카드를 내밀어 다시 오수재를 혼란에 빠뜨린다. 시청자들은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기 위해 드라마를 보게 되지만 한 편으로는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저 인물은 어째서 뭐든 제 하고픈 대로 할 수 있을까.

<왜 오수재인가>의 힘은 최태국이라는 최강 빌런에서 나오지만, 바로 이런 지점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고 작가의 자의적인 흐름이 너무 드러나는데, 이를 대리해주는 인물이 바로 최태국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뭐든 할 수 있는 최강 빌런(사실상 악마 같은 힘이 부여된)으로 세워져 있어 극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다소 작가의 무리한 전개라도 그가 꾸민 일이라고 던져 놓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인물.

오수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중반 이후를 지나면서 멜로가 과해지며 힘이 빠진 것이나, 후반부를 향해가면서 드라마의 뻔한 공식인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것, 그리고 놀랍게도 최주완의 아이 재희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어처구니없게도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이야기는 사실 너무 과한 막장 클리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오수재를 연기하는 서현진이나 최태국 역할의 허준호는 서로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며 극을 끌고 가기에 충분한 ‘미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연기들도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스토리가 전제되어야 빛날 수 있는 법이다. 독하디 독한 여자 주인공, 그럼에도 빠지지 않는 달달한 멜로, 진실을 파헤치고 결국에는 권선징악에 이르는 복수극 서사 그리고 출생의 비밀까지... 멋진 캐릭터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지리멸렬해진 건 이른바 드라마 성공 공식들을 여기저기 끼워 넣어서 생긴 일이다.

이런 과한 설정들은 최태국이라는 절대적인 악역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래서 <왜 오수재인가>라는 오수재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들여다보던 드라마가 갈수록 ‘왜 허준호인가’로 보이기 시작했다. 허준호 같은 베테랑이어서 어느 정도 몰입할 수 있었던 그 연기가 아니라면 벌써부터 이상해졌을 클리셰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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