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페’ 10년의 성장과, 옹알스 역사의 평행이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비가 오는데도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적지 않았다. 아마도 옹알스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힘이 컸을 게다. 제 10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개막식을 한 후 열린 첫 날 공연. 옹알스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다. 이미 옹알스 공연을 봤던 관객들까지 또 찾은 그 공연에서 관객들은 한 마디로 빵빵 터졌다. 이렇게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날 정도로 공연은 내내 웃음이 만발했다.

이미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논버벌 퍼포먼스로 자리한 옹알스 공연. 언어가 다르고 국가가 다르며 문화가 달라도 웃음은 통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실제로 증명해 보여준 공연. 그래서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간략하게 옹알스가 그간 거둔 성과들이 스크린에 채워지면서 이런 자막이 먼저 마음을 움직였다. ‘만국공통어가 영어라고 합니다 저희는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공연은 그간 옹알스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고 어떻게 진화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담은 ‘옹알스 히스토리 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첫 번째 코너는 조수원과 채경선이 대학로에서 만나 ‘말이 없는 코너’를 구성했던 무대를 선보였다. 아기가 옹알이 하듯이 옹알옹알 대는 특유의 말투로 정확한 언어는 아니지만 충분히 의미가 통하고 또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걸 그 ‘옹알이 말투’를 활용한 개그 코너는 입증해 보여줬다.

이 코너의 아이디어가 기발했던 건, 말이 아닌 말투와 소곤대는 목소리와 상반되는 화내는 고성이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섬세한 표정 연기 같은 ‘논버벌적 요소들’이 그 자체로 소통이 되면서도 동시에 우습다는 점이었다. 다 큰 어른이 아기 복장을 하고 얼굴에 코 묻은 분장을 한 채 나와서 아이처럼 좋아하다가 칭얼대고 때로는 화를 내는 모습은 그 흉내 내는 재미가 충분했다. 게다가 그게 언어 없이도 통할 수 있다는 건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논버벌 퍼포먼스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었다.

때론 바보스런 모습이 연출되지만 옹알스 공연은 그것이 아이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한때는 이주일부터 영구와 맹구 같은 바보 캐릭터가 계보를 가질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들어 바보를 흉내 내는 이른바 ‘바보 개그’는 거의 사라졌다. 그것이 약자를 비하한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옹알스는 아이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공감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공연이다.

아마도 간단한 아이디어로 시작했을 그 코너는 오래도록 무대에 올려지고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조금씩 진화했다. ‘옹알스 히스토리쇼’의 두 번째 코너는 그래서 새로 영입된 이경섭의 마술쇼를 보여줌으로써, 옹알스가 하나의 개그코너에서 다양한 기예나 마술, 비트박스, 댄스적 요소들까지 하나씩 더해지면서(인원이 보충되면서) 진화를 해왔고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걸 얘기했다.

개그코너에 조준우의 저글링, 최기섭, 최진영의 비트박스, 하박의 댄스 그리고 이경섭의 마술까지 더해지면서 옹알스는 볼거리는 물론이고 음악과 웃음까지 모두 끌어안은 논버벌 퍼포먼스의 종합 선물세트 같은 모습으로 성장했다. 두 명의 코너에서 시작해 퍼포먼스가 더해진 네 명으로 체제를 갖춘 후 지금의 7명 체제로 보다 완성도 높은 고품격 코미디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옹알스 히스토리 쇼’의 마지막 코너는 이러한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어떻게 어우러져 놀라우면서도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는 공연이 되었는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옹알스 공연의 백미이기도 한 조준우의 저글링과 최진영의 비트박스가 더해질 때 관객들의 반응은 최고조로 올랐다. 특히 관객들을 자신들의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함께 퍼포먼스를 완성해가는 모습은 옹알스 공연이 근본적으로 ‘소통의 욕구’를 풀어주는 카타르시스에 폭발력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줬다.

옹알스라는 세계적인 공연이 만들어진 이 히스토리를 들여다보면, 코미디 페스티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공연형 코미디가 어떻게 성장하고 진화하며 완성되어가는가를 보여준다. 즉 대학로 무대에서 펼쳐지는 코미디 공연이 왜 필요한가를 말해준다. 코미디 공연은 처음부터 완성되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려지면서 진화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때 방송을 장악했던 공개 코미디가 즉각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면 편집되거나 사라졌던 건 그래서 이러한 공연과 성장하는 코미디를 떠올려보면 안타까운 점이 있다.

그리고 옹알스가 보여준 코미디 공연의 성장과 진화는 지난 10년 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걸어온 그 길과 맞닿아 있다. 즉 처음 이 페스티벌을 부산에서 시작했을 때 단상 하나 세워놓고 해변에서 김준호 같은 개그맨들이 말 그대로 조악한 현실을 몸으로 채워가며 버텨냈던 걸 기억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참가자들이 찾는 국제적인 페스티벌이 됐다. 규모도 커졌고 출연하는 팀들도 다양해졌으며 그들이 보여주는 코미디도 논버벌 퍼포먼스부터 스트리트 공연, 콩트쇼, 스탠드업 코미디, 마임, 개그 연극 등등 다양해졌다.

올해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온라인 공연은 물론이고, ‘웃는 만큼 관람료를 내는’ 이른바 ‘개그페이’를 도입하는 등 IT기술과 코미디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또 한국을 포함한 스위스, 프랑스,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알제리아, 코트디부아르, 벨기에 등 모두 8개국 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가 참여하는 ‘국제코미디페스티벌 협회(ICFA)’가 출범해 코미디 포맷 등의 국제 교류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난 10년 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페스티벌을 지속해오며 조금씩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성장해온 결과다. 옹알스가 말한 ‘웃음’이라는 만국공통어‘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삼고 계속 ’부코페‘가 노력하고 성장해나간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 10년의 시간이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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