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채리나와 에프엑스 시대를 가로지는 뉴트로 그룹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22년 뉴진스의 <Attention>과 <Hype boy>가 울려 퍼지기 전까지 최신 걸그룹 사운드는 강렬함에 승부를 걸었다. 2022년 걸그룹 최고의 히트곡 (여자)아이들의 <Tomboy>만 보아도 에스파의 <Next Level>보다 몇 배는 더 화력을 키운 강한 사운드다. 또 강렬한 음악에 어울리게 최근 걸그룹의 분위기 역시 SF 영화나 마블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최신의 K팝 걸그룹이 짙은 눈화장과 함께 카리스마의 칼을 갈고 있을 때, 거리에서는 아날로그 시절을 기반으로 한 레트로 문화가 유행의 중심이 됐다. 특히 20대를 기반으로 과거의 정서를 느끼고, 변주하고, 즐기는 뉴트로는 새로운 놀이문화였다. 익선동과 힙지로, 용산의 뒷골목으로 뻗어나간 뉴트로는 당연히 대중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힙한 감성의 시티팝 유행은 물론, 그 시절의 느낌을 살려낸 인디뮤지션들이 등장한 지 이미 오래다.

특히 지금 세대의 레트로 놀이는 7080의 복고 유행과는 또 다르다. 그 시절의 젊은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20대가 그 시절의 20대를 재해석하는 새로운 문화다. 20대의 감각을 통해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들이 2022년의 메타버스 놀이터 안으로 들어와 있는 셈이다.

뉴진스는 이런 뉴트로 놀이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걸그룹이다. 그런데 뉴진스의 베이스는 이미 레트로 단물이 좀 빠진 1980년대 후반보다는 1990년대 후반에서 2천년대 초반의 것들이다.

채리나가 힙합 패션으로 무대에 오르고, 핑클의 멤버들이 무대에서는 귀엽거나 여성스러운 노래를 부르지만 일상에는 바닥을 질질 끄는 청바지를 입고 다니며 깔깔대던 그때. SES가 시크하고 세련된 걸그룹 음악을 들려주던 때. 홍대와 강남 일대에 너무 화사한 X세대와는 다른 벙벙한 캐주얼 차림의 20대가 돌아다니던 시절. 교포 느낌이 먹어주고 힙합 느낌 물씬 나는 LA나 뉴욕이 한국 가요의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등장하던 그 시기 말이다.

<Attention>과 <Hype boy>의 룩은 딱 이 시절의 스트릿패션을 기반으로 한다. 검은색 긴 생머리에 머리띠 정도, 벙벙한 바지에 운동화까지. 뉴진스가 데뷔 후 뉴트로 세대만이 아니라 실제 90년대 후반에 힙했던 이모팬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실제 90년대 후반 트렌디한 룩을 입었고, 지금은 세련된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그녀들에게, 뉴진스의 음악과 영상은 추억과 현재를 동시에 넘나드는 여행인 셈이다.

그런데 뉴진스의 첫 앨범에 담긴 음악은 단순히 90년대 후반의 모방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친숙한 훅이 없이 낯설고 신선한 사운드를 내세운다. 이 전략은 2010년대 등장한 에프엑스의 전략과 비슷하다. 두 걸그룹의 노래는 익숙한 음악은 아니지만, 듣다보면 계속 듣고 싶어지는 묘한 중독감이 있다.

다만 두 걸그룹 사이의 전략은 얼핏 비슷해도 음악의 느낌은 또 다르다. 에프엑스는 당시 한국에 친숙하지 않던 EDM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반면 뉴진스는 90년대 후반부터 팝 시장에서는 유행했지만 한국에서는 소몰이창법에 밀려 크게 인기를 못 끈 네오소울 느낌의 사운드를 살려낸 맛이 있다. 그 때문에 에프엑스보다 좀 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살아 있다. 또 한국가요의 익숙한 훅은 없어도 한국적인 ‘뽕끼’를 히말라야핑크솔트처럼 사운드에 살짝 뿌린다. 뉴진스의 앨범에 참여한 이태원 기반의 DJ 250의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 때문에 세련된 음악임에도 무의식적으로 금방 몇 소절을 흥얼거리게 되는 힘이 있다.

뉴진스의 레퍼런스 격인 에프엑스는 음악이나 이미지가 EDM의 이상한 나라에서 온 것 같은 걸그룹이었다. 하지만 뉴진스는 밀레니엄 시절의 걸그룹 디바와 핑클과 SES, 베이비복스, O-24, 티티마 등의 장점을 미묘하게 조합해 탄생시킨 K팝 뉴트로 가상세계의 무국적 걸그룹이다. 광야에 비하면 훨씬 더 친숙하게 접속할 수 있는 가상세계에서 온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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