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진지한 돌아이 신하균이 만드는 반전 웃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과연 ‘하균神’은 그간 고개 숙여 왔던 시트콤도 살려낼 수 있을까.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트콤 <유니콘>은 일단 이런 질문부터 던져보게 한다. 우리에게 시트콤의 전성시대라고 하면 <순풍산부인과>부터 <하이킥> 시리즈까지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저녁 시간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김병욱 감독이 건재하던 시기일 게다. 하지만 <감자별 2013QR3>를 끝으로 더 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는 김병욱 감독과 함께 시트콤이라는 장르도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유니콘>은 어떨까. 가장 눈에 띠는 건 신하균이 포진해 있다는 것과 유병재가 대본을 쓴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유병재는 예능인으로도 자리를 잡은 인물이지만, 본업은 예능작가다. <유니콘>을 통해 본업으로 돌아온 것. 스탠드업 코미디 등으로 그가 가진 유머코드를 들여다보면 진지함을 슬쩍 무너뜨리는 ‘농담’ 같은 웃음이 그의 장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마구 대놓고 웃기기보다는 그 상황을 음미하면 할수록 짙게 배어나오는 그런 웃음이다.

<유니콘>의 첫 화 ‘데모데이’에서 유니콘 기업 맥콤이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피칭하는 에피소드에서 이러한 유병재의 유머코드는 신하균의 연기와 어우러져 이 시트콤이 보여줄 웃음코드의 특징을 드러낸다. 대표인 스티브(신하균)가 도착하지 않아 대신 스피치에 나선 필립(김욱)이 뇌파 측정기를 쓰고 드론을 움직이는 걸 시연하다 실패하자 조명이 꺼지고 극적으로 스티브가 등장해 본격 스피치를 이어가는 장면은 무언가 대단한 사업을 기대케 한다.

너무 진지해 비장하게까지 느껴지는 스티브가 ‘실패’에 대해 언급하며 그것이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다시 뇌파로 연결한 드론을 날리는 시연을 성공시킨 것. 하지만 뇌파 기술로 그려낼 수 있는 장밋빛 미래에 대해 줄줄이 읊어대던 스티브가 설명하는 새로운 사업아이템이 기가 막힌다. “뇌파를 이용한 남성용 다운 펌 머신 차브네!” 이 놀라운 기술로 고작 하려는 사업이 남자들의 옆머리를 눌러주는 기계라니.

한껏 끌어올렸던 기대감을 황당한 결말로 이끌어 무너뜨리며 만들어내는 웃음. 그리고 거기에 담겨 있는 농담이 바로 <유니콘>이 가진 시트콤의 색깔이다. 여기에는 옆머리에 집착하는 남자들의 공감대가 있고, 그걸 과장되고 진지하게 풀어냄으로써 이른바 ‘값비싼 쓰레기’ 기술들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그리고 자신의 공통점이 무엇이냐며, 아무 거나 좋고 수평적인 체계이니 틀에 갇혀 있지 말고 자유롭게 말하라는 스티브의 질문은 사실 기대하는 답이 정해져있다. “혁신, 도전, 융합” 같은 것. 하지만 필립이 “이혼”이라 말하자 발끈하는 스티브에게서 이 유니콘 기업 맥콤이 가진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대한 시큰둥한 반응에 팔로워와 이슈에 집착하며 노이즈 마케팅을 못이기는 척 하는 스티브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이른바 ‘유니콘 기업’이라고 하면 누구나 엄청난 성공을 꿈꾸게 만들고, 그걸 위해 대단한 가치들을 실현한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상은 우연적인 요소들이 더 작용한다는 걸 이 시트콤은 에둘러 꼬집는다. 뇌파 기술을 이용한 옆머리 눌러주는 기계라는 말도 안되는 신규 사업 아이템이 망할 위기에 처했지만 갑자기 이 회사가 갖고 있던 데이팅 어플에 고령 가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사업 방향을 바꿔보려는(피보팅) 스티브의 모습이 그렇다.

짧게 등장하지만 길거리에 놓여진 소파에 우연히 제시(배유람)가 앉았다가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하더니 그곳이 힙지로가 되는 과정은 이러한 사업에 있어서의 우연적 요소들을 드러낸다. 그렇게 우연히 벌어지는 성공에 ‘실패를 기회로 본다’거나 대단한 ‘혁신’이나 ‘도전’이라는 단어로 포장되는 현실을 꼬집는 것.

잔잔하게 느껴지지만 의외로 우스운 상황 속에 담긴 날선 풍자의식은 <유니콘> 곳곳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겉보기엔 전혀 상처를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스티브가 찾아간 심리상담에서 상담을 해주는 인물은 마치 오은영 박사 같은 느낌으로 그의 고민을 들어준다. 그런데 하는 상담이라는 것이 너무나 상식적인 것들이다. “사는 게 쉽지 않네요”라는 말에 “쉽지 않다는 건 어렵다는 뜻이죠”라고 말하고, “제 인생은 늘 겨울이에요”라는 말에 “겨울은 추운 계절이죠”라고 답한다. 또 “너무 너무 힘들다”는 고민에 상담사(황정민)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 보세요”라고 말한다. 상식적이지만 진지하게 하는 말에 감격하며 우는 스티브의 모습은 최근 심리 상담에 집착하는 세태를 에둘러 꼬집는다.

혁신과 도전을 이야기하지만 사업 결정을 하는데 있어 점쟁이를 찾아가 묻는 스티브와 맥콤 직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중차대한 사안들에 대해 무속의 힘을 빌리려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일이 과연 시트콤에만 벌어지는 일인가. 심지어 정치권에서조차 심각한 논란을 빚기도 하는 일이 아니던가.

유병재의 이러한 풍자적인 웃음 코드는 신하균이라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고 비장할 정도로 그 역할을 연기해내는 인물과 섞여 기막힌 부조화의 웃음을 만든다. 말도 안되는 상황의 진지함이 주는 웃음이 그것이다. 전작이었던 드라마 <괴물>에서 핏줄까지 연기하던 하균神의 모습을 비틀어내는 것만으로 <유니콘>이 가진 시트콤의 재미가 살아난다.

물론 그 재미의 결을 찾아내고 적응하기 시작하면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날 수 있지만, 그 코드를 맞추지 못하면 웃음의 포인트를 놓칠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유니콘>의 기대감이 큰 건, 바로 그 진지함 때문이다. 시트콤이나 코미디라고 하면 어딘가 가벼운 접근을 생각하지만 실상은 진지해야 그걸 전복시키는 웃음이 가능하다는 걸 유병재도 신하균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괴물>에서 그 기막힌 비극을 미친 연기로 씹어 먹었던 신하균은 이제 이 전복적인 희극으로도 과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 ‘과연’이 ‘실로’가 되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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