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날 따라와’, 성장한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면 어떨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새 예능 <이젠 날 따라와> 첫 방송을 보면서 미국의 영화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그는 1990년대 초 시애틀의 그런지 사운드가 울려 퍼지던 시절 텍사스주 한 구석에서 <데이지드 앤 컨퓨즈드>, <슬랙커> 같은 당시 힙한 X세대의 방황을 담은 초저예산 영화로 미국 인디영화계의 총아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1990년대 X세대들의 청춘연가라 할 수 있는 불멸의 로맨스물 <비포 선라이즈>로 전 세계적인 흥행은 물론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과 감독상을 거머쥐며 스타감독의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년 뒤, 이번엔 실제 동네 친구였던 잭 블랙과 <스쿨 오브 락>이란 불세출의 코미디 영화를 내놓았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장르와 코드를 넘어 종횡무진 오가는 듯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반짝이던 황홀한 순간들, 그 시절의 내음을 포착하고 아스라이 멀어져간 시간들을 카메라 안에서 다시 복원해낸다. 그의 영화들은 사진첩을 들춰보며 느끼는 것처럼 흘러간 시간과 성장에 관한 기록이다.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어지는 <비포>시리즈는 청춘 시절 뜨거웠던 짧은 만남 이후 10년 단위로 자연스럽게 늘어난 주름처럼 흘러간 세월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보이후드>는 감독이 유년기를 보낸 텍사스 샌안토니오 등지를 배경으로 6살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성장하는 모습을 실제로 12년간 촬영한 초장기 프로젝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젠 날 따라와>는 <비포> 시리즈와 <보이후드>를 환기시킨다. 지금까지 지상파 예능을 10여년 이상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날 육아예능, 가족예능의 원형인 MBC <아빠! 어디가?>의 대략 10년 후 버전이다. 사랑이를 제외하고 모두 윤민수보다 자라버린 키와 흘러버린 시간만큼 아빠와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아닐까 싶어 나온 기획이라고 한다.

크레딧에는 <아빠! 어디가?>를 연출했던 작가와 PD의 이름을 볼 수 있고 출연진은 <아빠! 어디가?>의 윤민수와 윤후, 이종혁과 준수 부자와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오늘날의 브랜드로 만든 1세대 공신 추성훈, 추사랑 부녀와 4년간 중추 역할을 했던 이동국과 재시 부녀가 함께한다. 두 프로그램의 전성 시절 출연자들을 소환한 만큼 반가움은 배가된다.

잘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반갑고 기특하다. 옛 기억을 나름 생산적으로 꺼내먹는 예능 기획도 좋았다. 여전히 육아예능의 기본 정서인 흐뭇함으로 지켜볼 여지가 있었고, 크게 변하지 않은 부모와 자식들의 관계는 안온함을 느끼기 충분했다. 그리고 여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시기에 하와이의 이국적인 풍경과 좋은 숙소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대리만족하는 기본적인 볼거리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반가운 재회 인사 이후 서먹해진다. 반가움도 있지만 귀여운 사랑이가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으로 나타나고, 큰키의 이종혁보다 더 훌쩍 자란 준수의 덩치만큼 흘러간 세월이 주는 낯선 공기 또한 존재한다. 그런데 이를 좁힐 이벤트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없이 체험 위주의 스케줄이 촘촘하게 진행된다. 이 예능의 기본 구성은 하와이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아이들이 전부 짜고, 아빠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현장에 가서 도전하는 콘셉트다. 아이들이 아빠들을 생각해 준비한 여행 코스를 즐기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교차해 애틋한 속마음을 드러내며 가족 간의 애정,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문제는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다보니 이 기본 골조가 너무나 뻔하게 드러난다.

여행 예능이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분위기긴 하지만 관광 상품 체험만으로 예능이 될 수 없다. 스노클링, 스카이다이빙, 상어체험, 불꽃놀이 보기, 하이킹 등등 아이들이 짰다는 루트대로 움직이다보니 일종의 패키지 관광 상품을 나열한 것 이상의 재미를 느끼기가 힘들다. 물론 자녀들로 인한 도전이란 차별점이 있다. 그러나 고소공포증이 심한 윤민수는 스카이다이빙을 시도할 생각조차 안 한다. 아쉽지만 이를 이해해보려는 아들의 모습이나 윤후가 상어를 좋아하는 걸 처음 알았다는 고백 등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는 새로운 경험이란 의미부여를 하지만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해도 결국 레저인데다 스카이다이빙도 여행 예능에서 너무나 많이 봤다. 이제 관광 액티비티 정도로 성취나 감동을 논하기는 어렵다.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부모 자식 관계에 집중했을 때 보여줄 그림과 정서 또한 단선적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여행을 다니던, 그리고 육아예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이름과 얼굴을 전국에 알린 비연예인이자 연예인 가족 아이들이 십대가 되어 다시 만났다. 그것도 하와이 여행이란 일상 밖의 특별한 이벤트다. 또래이기도 하면서 특별한 배경을 공유하는 친구들끼리 만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 새로운 삼촌들과의 관계 등에서 성장의 단면과 반가움을 넘어선 새로운 애정을 느낄 여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각자 아빠와 자식의 관계에 집중하다보니 네 가족이 함께하지만 패키지여행으로 모인 각기 다른 그룹처럼 느껴져 시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혹시 <아빠! 어디가?>의 메인 연출자였던 김유곤 PD의 <둥지탈출>를 의식해서일까. 아이들이 다시 함께했을 때 보여줄 모습들, 친해져가고 그 안에서 역할을 만드는 케미스트리나 그 또래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순간들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여행의 순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체험의 나열일 뿐이다. 함께 떠난 여행이기에, 또한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을까에 대한 기대인 만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이 또래 집단의 케미스트리에 집중했으면 보다 아기자기한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족의 소중함이란 원론적인 정서나 스스럼없이 영어로 소통할 정도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십대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예능’의 볼거리가 되긴 어렵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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