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에서 절망까지, 지금 우리에겐 원맨쇼 가능한 배우가 필요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같은 드라마 속 같은 인물이지만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tvN 토일드라마 <슈룹>의 중전 임화령 역할을 연기하는 김혜수는 말 그대로 ‘태세전환’이 기가 막히다. 위기에 몰려 폐비 윤황후(서이숙)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기 위해 빗속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모습에서는 절절한 모성의 절망감과 위기감이 절로 묻어난다. 그런데 궁으로 돌아와 그간 다소 등한시했던 자식교육을 위해 스스로 나서는 모습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는 코믹한 면면을 드러낸다.

코믹함과 절절함을 오가는 김혜수의 이런 연기는 <슈룹>이라는 독특한 사극의 색깔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슈룹>은 사극이 가진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이를 슬쩍 무너뜨리며 ‘조선시대판 <SKY 캐슬>’ 패러디로 웃음을 주는 요소들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궁중암투, 자식교육을 두고 벌어지는 어미들의 대결, 권력을 잡으려는 자와 이를 밀어내려는 자들 사이의 치열한 심리전이 이 작품의 무게감을 형성한다면, 중간 중간 보여주는 시험을 앞두고 왕자들이 족집게 과외를 받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웃음을 준다.

사실 하나의 장르적 통일성으로 보면 <슈룹>의 이런 장르 운용 방식은 동화(몰입)와 이화(각성)를 붙여놓은 것으로 어딘가 엇박자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즉 진중한 무게감이 주는 몰입감에 빠져들게 하다가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등장해 그 몰입을 깨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특성상 <슈룹>의 이러한 몰입과 각성을 오가며, 진지함과 코믹함, 무거움과 가벼움, 또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끌고 가는 건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미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있고 그 문법들 또한 꿰고 있다. 장르가 순간 바뀌는 상황이 전개되어도 그것이 가진 패러디적 성격을 쉽게 이해한다. 아니 오히려 요즘처럼 드라마를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여가와 휴식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에게는 이러한 무거운 긴장감을 슬쩍 슬쩍 풀어놓는 방식을 반가워한다. 결국 드라마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나 주제의식 같은 의미만큼 그 과정을 풀어나가는 재미 또한 느끼고 싶은 게 지금의 시청자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여러 결을 넘나드는 드라마를 연기자들이 얼마나 잘 소화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잘 소화해내면 여러 결의 재미와 의미를 모두 전해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지리멸렬한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슈룹>의 김혜수는 이 작품이 가진 여러 색깔을 최대화해 연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보인다. 여러 장르적 색깔의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태세전환하며 동시에 그 인물의 여러 면면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슈룹>의 김혜수가 보여주고 있듯이 최근 들어 코믹과 절절함을 오가며 시청자들을 울고 웃길 수 있는 배우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예를 들어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무려 15%(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데는 남궁민이라는 배우의 원맨쇼를 그 요인으로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천원짜리 변호사> 역시 코미디 활극으로 시작해 이 변호사의 지독할 정도의 비극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이를 200% 소화해내고 있는 남궁민이 있어 가능해진 결과다.

상황에 따른 순간적인 긴장과 이를 풀어주는 해소를 넘나드는 작품들은 이제 드라마에 더더욱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들은 깊은 몰입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너무 무거워 침잠하지는 않는 그런 경험을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최근 2회 만에 9%를 기록한 <슈룹>이나 15%를 넘겨버린 <천원짜리 변호사>의 높은 시청률이 그걸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김혜수나 남궁민 같은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력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는 원맨쇼 배우들의 존재감은 앞으로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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