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진검승부’, 이런 변호사·검사들이라면 좋겠지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야. 넌 검찰이 뭐라고 생각하냐? 응? 정의? 진실? 인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길 바라. 장담하건대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그거 바라는 사람? 없어. 여기는 올라갈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사건도 덮고 조작할 수 있는 곳이니까. 인맥과 배경만 있다면 있는 죄도 기소유예 처분해주는 곳.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고 집단이익에 반하는 놈은 그 누구라도 쳐버리는 곳. 너같이 혼자 나대는 불량품 따위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곳, 그게 여기 검찰이야.”
KBS 새 수목드라마 <진검승부>에서 중앙지검 형사부 오도환 검사(하준)는 검찰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진범은 분명 따로 있는데 이장원 차장검사(최광일)의 사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오도환 검사에게 이곳의 꼴통 불량 검사 진정(도경수)이 반발하자 검찰의 현실이 그렇다는 걸 말해주는 것. 물론 드라마 속 허구적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이고 그래서 오도환이 말하듯 검찰 전부가 정의, 진실, 인권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권력을 이용한 개인적 욕망에만 관심이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닐 게다. 하지만 이러한 부패한 검찰을 드라마의 배경으로 세워 놓고 그 안에 이질적인 불량 검사를 주인공으로 세워놓은 건 검찰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이 존재한다는 걸 전제한다.

이 꼴통 불량 검사의 이름이 ‘진정’이고 이 드라마 제목이 <진검승부>라는 것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이름은 ‘진짜 정의’를 말하는 것 같고, <진검승부>란 그래서 저 부패한 검찰들과 벌이는 ‘진정 검사의 (에두르지 않는) 진검 승부’라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진정 검사는 그래서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는 홍길동의 검사 버전 같은 캐릭터다. 그는 실제로 검도를 배운 인물로 검으로 악당들을 패주기도 하는 인물이다. 이런 검사가 현실에 존재할 리 만무다. 그런데 왜 드라마는 이러한 홍길동 검사를 탄생시킨 걸까.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 <진검승부>와 <법대로 사랑하라>, SBS <천원짜리 변호사>, 디즈니 플러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물론이고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왜 오수재인가>, <닥터 로이어> 등등 최근 들어 검사나 변호사 등장하는 이른바 법정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경향은 장르물들이 점점 더 많이 시도되고 그 중에서도 법정물이 갖는 소재적인 풍부함과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작용한 면이 크지만, 동시에 현재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사법 정의에 대한 민감한 정서 또한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변호사나 검사가 비현실적인 서민 영웅 캐릭터로 등장해 판타지 사이다를 던져주는 법정물들이 주목된다. 예를 들어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남궁민) 같은 변호사는 갑질하는 세상과 맞서 약자의 편에서 싸우는 돈키호테 변호사에 가깝다. 단돈 천 원의 수임료로 변호를 맡아준다는 이 인물은 그 캐릭터 자체가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을 뒤집는다. 또 법조인이 등장하곤 있지만 치열한 법 조항을 두고 싸우는 본격 법정물이라기보다는 갑질하는 자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골탕 먹이고 무너뜨리는 활극에 가깝다.
<진검승부> 또한 이러한 활극적 요소들이 도드라진다. 저 오도환 검사가 부패한 검찰의 현실이 이런데 거기에 반기를 드는 일이 얼마나 순진하고 멍청한 일인가를 말할 때 진정 검사는 홍길동처럼 이렇게 맞받으며 먼저 주먹을 날린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넌 대체 날 뭘로 보는 거냐? 착각하지 마. 나도 다 알아. 니들이 날 불량품이라 부르는 것도 알고. 여기가 네가 말한 것처럼 썩어 빠진 데라는 것도 알아. 근데 문제는 뭔지 알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니까 이 새끼들이 자꾸 선을 넘어. 이번엔 니들 너무 갔어.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니들 같은 새끼들 전부 박살 내 줄게.”

그런데 돈키호테 변호사와 홍길동 검사가 드라마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걸 뭘 말해주는 걸까. 지금 사법 정의의 시스템이 부조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대중적 정서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게 아닐까. 인물들이 갈수록 현실성을 넘어 비현실적으로까지 과장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이런 인물들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래서 더 불투명해진 사법 정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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