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타고 세계적인 주목받은 ‘우영우’의 저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K드라마는 디스토피아 담은 장르물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최근 글로벌 열풍을 이끈 일련의 K드라마들을 봐온 전 세계 시청자들이라면 이런 오해를 가질 만하다. 실제로 <킹덤>이 그린 헬조선의 단상이나, <오징어게임>이 그린 승자독식 경쟁사회의 모습이 그렇다. 또 실제 지옥 같은 <지옥>이나 아이들마저 죽음으로 몰아넣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떤가. 이 정도면 K드라마가 심지어 ‘K디스토피아’라 불리기도 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도 하다.
하지만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이 없던 시절부터 ‘한류드라마’로 불리던 K드라마들을 봐왔던 해외의 시청자들이라면 이런 생각이 오해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게다. <겨울연가>부터 시작해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사랑의 불시착> 등등 사실상 K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을 담은 멜로드라마였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 이례적인 사건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 드라마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4주째 비영어권 TV쇼 부문 1위를 기록함으로써 지난주에는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TV쇼가 됐다.
다만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그간 열풍을 이끌었던 ‘K디스토피아’ 이외에도 ‘K휴먼’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의 지대를 열고 있다는 점이다. 날선 사회 비판 의식을 장르물에 얹어 풀어냄으로써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K드라마가 본래부터 갖고 있던 이른바 ‘K휴먼’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고나 할까.

한국의 멜로드라마는 최근 그 사적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좀 더 사회적 맥락과 의미망을 넓혀가며 휴먼드라마로 진화해왔다. <동백꽃 필 무렵>이나 <밀회>,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등등의 작품들이 그렇다. 그 안에는 사랑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이보다 훨씬 확장된 사회적인 메시지들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런 K드라마의 계보 위에 서 있는 작품이다. 장르적으로는 법정드라마의 색깔을 내세우고 있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사회에서의 적응과 성장기를 그렸다. 그 안에는 당연히 같은 멋진 남성과의 멜로도 담겨 있지만, 직장 동료들끼리의 동료애와 절친과의 끈끈한 우정도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정드라마가 가져온 사건들이 대부분 장애인부터 성소수자, 어린이, 재개발 지역 주민 등등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휴머니즘이 녹아있다.

법정드라마라는 보편적인 장르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 지극히 로컬 색깔이 분명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것이 주효했다. 지역의 특수성을 가진 소재들이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메시지들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담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대중들의 마음까지 힐링시킨 이유가 되었다.
물론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이미 팬덤이 확보된 멜로와 휴먼에 맞춰진 K드라마의 저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저변이 아시아권을 넘어 남미로 북미로 또 유럽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다. <굿닥터> 같은 장르물을 더한 휴먼드라마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처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K휴먼 또한 K디스토피아 같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자들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글로벌 성공을 통해 읽어내야 할 것은 먼저 ‘서구는 장르물, 아시아권은 멜로’ 같은 틀에 박힌 선입견과 편견을 벗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어떤 것을 제작하더라도 완성도를 높이고 분명한 차별성과 보편적 공감대를 추구하는 것만으로 특정 권역을 넘어서는 글로벌한 반응들이 나올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K휴먼은 그래서 어쩌면 K드라마가 지금껏 쌓아왔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tvN, K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