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천재적 해결능력, 그리고 좋은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비교적 쉽다. 큰 제작비 규모와 완성도 높은 CG가 만만치 않지만 익숙한 서사와 간단한 세계관으로 구성된 드라마다. 우선 등장인물과 갈등 지점이 간단하고, 매회 개별 에피소드가 짧은 호흡으로 전개된다. 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의 활약을 중심으로 상식적인 선에서 결론이 나는 해피엔딩이 기다린다. 꼬아놓은 복잡한 서스펜스, 현실을 담아낸 은유의 메시지, 반전으로 거듭하는 충격 요법을 내세우기 보다는 배우들이 만드는 매력과 청량한 극의 세계관이 긍정과 희망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최근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들 <DP>, <소년심판>, <나의 해방일지> 등 사회 문제를 극한 현실 고증이나 핍진한 현실 묘사로 옮겨놓거나, <지옥>, <오징어게임>처럼 장르적 성취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가온 것에 비하면 꽤나 가볍고 단순한 편이다. ‘자폐스펙트럼’이란 까다롭고 조심해야 하는 설정도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이 탁월하게 소화했다. 법정물이다보니 7~8회처럼 극중 사건의 모티브가 되는 실제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사회적 어젠다를 꺼내기 위한 장치로까지 나가진 않는다. 자폐 변호사는 신선한 등장이나, 사회적 약자이면서 동시에 천재성을 가진 양가적 캐릭터는 꽤 익숙한 문법에 속한다. 밝고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 아래에 깔려 있는 오랜 상처와 아픔은 너무나도 익숙한 출생의 비밀이란 K-드라마의 대표적인 코드로 풀어낼 요량이다.

그런데 이 쉽고 가벼운 드라마 <우영우>가 매회 최고 시청률을 경신해나가고 있다. ENA라는 신생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무겁디무거운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0.9%로 시작해 8회 만에 13%를 넘기는 시청률을 터트렸다. 법정드라마지만 심각하지 않고, 주인공이 장애를 가졌지만 무거운 이슈로 풀지 않았다. 그 대신 언제나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존재와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따뜻한 판타지’가 쨍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이 취약성을 드러내다보니 극 안에서, 또 시청자와 극의 세계관 사이에서 연대의 문턱이 더욱 낮아진다. 몰입을 방해하고 실소를 머금게 하는 억지 PPL이 없다는 점 또한 판타지를 오롯이 즐기고 함께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져보면 천재 자폐 변호사라는 설정부터, 연전연승을 거두는 승소율, 언제나 뒤를 봐주는 따뜻한 상사의 존재까지 현실의 반영이라기보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판타지의 환영이다. 우영우를 돕는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잘 해결되리라는 믿음을 현실이자 일상으로 만든다. 칭찬은 피하지 않고, 비판은 아끼는 법무법인 한바다의 정명석 시니어 변호사(강기영)는 입이 아닌 마음과 행동으로 후배들을 든든하게 지원하며 성장을 이끈다.

이 연대와 지지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극중 국내 1,2위를 다투는 대형 로펌이 바위가 아니라 바위를 치는 ‘계란’ 편에 서 준다는 데 있다. 이는 우영우 옆에 최수연(하윤경), 이준호(강태오), 동그라미(주현영), 그 위에 정명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뒤에는 어쩌다보니 결과적으로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판단으로 수임을 하고 이를 통해 세상에 이로움을 더하는 대형로펌 한바다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비정하고 돈을 좇는 대형 로펌이 (어떤 이유이든) 우리 편, 낮은 편이 되는 전복적인 설정은 자폐 변호사의 존재만큼이나 짜릿한 판타지를 유발한다. 출생의 비밀 코드를 물고 주요한 갈등의 복선으로 등장하는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의 이야기는 이런 연대와 지지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최근 K-콘텐츠와 마찬가지로 한국 소설도 모처럼 호황이다. 문단은 1980~90년대생 젊은 작가들로 간판 교체가 되었고 늘 변방이라 언급조차 안 되었던 SF 장르와 여성 작가들이 중심에 섰다. 더 놀라운 것은 대중적 확장이다. 지난 1년간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등 베스트셀러 톱 10 안에 한국 소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주목하며 특정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교차하면서 피어나는 따스한 위로의 판타지로 독자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 <우영우>도 마찬가지다. <우영우>는 쉽고 단순하고 익숙한 코드로 진행되는데 새롭고 진하게 와 닿는다. 드라마의 청량함도 마동석의 주먹처럼 우영우의 천재적 해결능력 한방에서 톡 쏘듯 터진다. 하지만 우영우 혼자서는 무엇도 해낼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주고 지켜줄 때 힘은 배가된다. 그런 연대와 지지가 <우영우>가 입소문을 타고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우영우에게 말한 “변호사님 같은 변호사가 내 편을 들어주면 좋겠어요.”는 사랑고백인 동시에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이토록 명료하게 ‘내 편’의 필요를 드러내니 허전한 우리의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온다. 웰메이드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시대상의 반영과 조우라는 측면에서 <우영우>는 이미 굉장한 성취를 거두며 오늘날 우리의 심적 허기를 달래주고 있다. 불안의 팽배와 각자도생의 고단함에 빠진 현재 우리 사회를 어루만져주는 따스함이 입소문을 넘어 ‘여론’이 되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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