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룹’, 국모의 자격 보여준 절대 강자 김혜수의 독주

[엔터미디어=정덕현] “보검군. 세자가 되는 것만이 너의 능력을 증명하는 길이 아니야. 왕의 자리는 그 모든 권력을 갖지만 그 모든 일들을 왕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보검군 네가 우리 세자의 곁에서 힘을 보태어 주었으면 한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에서 중전 화령(김혜수)은 세자 경합에서 밀려난 보검군을 불러 그를 위로한다.

그의 어머니 태소용(김가은)이 중궁전 시녀 출신이라는 이유로 보검군은 그 신분의 벽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마치 보검군을 세자로 밀어주는 듯 싶었던 대비(김해숙)는 그를 이용해 의성군(찬희)을 세자로 세우려는 영의정 황원형(김의성)과 그의 딸 황귀인(옥자연)으로부터 더 많은 걸 얻어냈다. 보검군을 이용했던 것.

속이 문드러질 보검군이지만 속 깊은 이 아이는 오히려 어머니를 걱정한다. 자신을 세자로 세우기 위해 화령에게도 몹쓸 짓을 하기도 했던 어머니를 벌하지 말아 달라 청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화령은 보검군의 깊은 속을 알아챈다. “지금 네 어미를 걱정하는 것이냐? 이리 가까이 오거라. 넌? 너는 괜찮은 것이냐?” 괜찮은 척 해도 그 누구보다 아파할 보검군을 보듬어준 것. “힘들면 힘들다 말해도 괜찮다. 아프면 아픈 티 내거라. 그래야 사람들도 알아. 네가 괜찮지 않다는 거.”

<슈룹>에서 화령은 중전이 왜 국모라고 불리는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 자식을 세자로 세우기 위해 상대를 음해하고 거짓 소문을 내고 심지어 독을 쓰기까지 하는 후궁들 속에서 화령은 지엄한 중전의 무서움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의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끌어안아주고 위로해준다.

엄마인 고귀인의 기대치에 맞추지 못하지만 심성이 착한 심소군(문성현)이 도적들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걸인처럼 돌아왔을 때 그 어미인 고귀인은 그를 밀어냈다. 몸이 부서지고 숨이 끊어지더라도 궁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며 패물 하나를 쥐어주고 내쫓았다. 하지만 배고파 쓰러진 그를 거둬 밥을 챙겨 준 건 화령이었다. 그 사실을 안 고귀인이 불같이 화를 내며 밥상을 엎어버리고, “이 꼴을 보일 거면 차라리 죽으라”고까지 했지만.

결국 목을 맨 심소군을 화령이 살려냈지만, 그는 그렇게 일을 만든 고귀인을 질책하지 않았다. “난 앞으로도 고귀인이 아이가 잘못했을 때 혼을 내는 모친이었으면 좋겠네. 심소군 역시 따끔하게 혼이 나더라도 고개를 들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저 아이가 끝까지 쥐고 있었던 게 뭔 줄 아는가? 자네가 심소군에게 준 것이라 들었네. 이리 버선발로 달려온 걸 보니 자네도 심소군을 걱정한 것이 아닌가.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하네.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가장 큰 벌을 받은 사람 또한 자네니까.”

화령이 서슬퍼런 대비의 여우같은 간계와 대결하는 방식은 단단한 카리스마만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그 아픈 상처까지 보듬어주는 자애로움이 한 때 적이었던 후궁들을 그의 측근으로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 심소군을 살려낸 이후로 고귀인은 화령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었고, 보검군을 위로해준 후 태소용은 과거처럼 화령을 따르는 후궁이 되었다.

화령은 국모의 자격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갈수록 위엄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매력을 드러내게 됐다. 그건 <슈룹>이라는 ‘우산’을 뜻하는 고어를 이 드라마가 가져온 진짜 의미를 보게 해준다. 화령이라는 ‘슈룹’은 자기 자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식들까지 씌워주는 포용까지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처럼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해졌지만, 화령의 일방적인 독주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비는 앞으로도 세자빈 간택을 두고 화령과 각을 세울 것이지만, 어딘지 대비에게만 집중하는 대결구도는 드라마는 조금 단순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애초 기대했던 황귀인과 황원형이 좀 더 이 대결의 전면으로 등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남은 분량에서도 화령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더 빛날 수 있으려면.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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