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판사’·‘지옥법정’, 법정 드라마는 각광받는데 법률 예능은 왜 안 통할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법정은 최근 한국 드라마의 가장 익숙한 배경이다. 가볍게 떠올려 봐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천원짜리 변호사>, <법대로 사랑하라>, <빅마우스>, <군검사 도베르만>, <어게인 마이 라이프>, <왜 오수재인가>,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진검승부>,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 <블라인드>, <법쩐> 등 다양한 법정물들이 찾아왔었다. 드라마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최근 우리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법정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대신한 대리만족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장으로써, 세상의 거악과 맞서서 정의구현을 실현하고 소외된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무대로 각광받았다.
이런 분위기를 예능에서도 이어받았다. 연초부터 JTBC는 전현무, 홍진경, 이찬원, 오나라 등 호화 출연진이 자리한 6부작 파일럿 <안방판사>를, SBS는 4년 만에 돌아온 강호동의 복귀작 <이상한나라의 지옥법정>을 나란히 선보였다. 두 프로그램은 데칼코마니마냥 무척 비슷한 모양새를 띈다. <안방판사>는 과거 시사예능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썰전>과 같은 구도로 스튜디오를 구성했고, <지옥법정>은 실제로 시사교양국에서 만들었다. <안방판사>는 4명의 연예인과 5명의 현직 변호사가 모두 변호사라는 동등한 신분으로 팀을 나눠 변론을 펼치고, <지옥법정>은 강호동이 참관인이란 이름으로 진행을 하고, 은지원, 지상렬 등 노련한 6명의 예능 선수들이 3:3으로 팀을 나눠 변론을 맡는다.

두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도 엇비슷하다. <안방판사>는 누구도 정확히 따져주지 못했던, 삶 속의 크고 작은 갈등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 보자고 하고, <지옥법정>은 현실 속 크고 작은 갈등을 연예인들과 함께 풀어보는 ‘대국민 한풀이 재판쇼’를 표방하고 있다. 차이점은 <안방판사>는 판결을 촬영 중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공개 채팅방 속 안방판사들, 즉 (정체를 알 수 없는)다수의 일반인들의 의견을 종합해 판결을 내리고, <지옥법정>은 현직 정재민 판사가 판결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다시 한 번 교집합을 이루는데, 이 두 쇼 모두 실제 재판과 달리 판결은 프로그램의 전체 흐름에서 사족에 가깝다.
물론 법조인들이 출연해서 자문 및 정보 제공을 하는 만큼 법률정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안방판사>의 경우 나름 교양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갖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시청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또 ‘Law하우 코너’를 따로 만들어, 이혼을 준비한다면 배우자의 거래 은행과 증권사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거나, 유산 몰아주기, 유류분 청구 소송, 스토킹 범죄에 대한 정보 등등 최신 판례와 법률 지식들이 나오긴 한다.

그러나 두 법률 예능 모두 법률, 법정을 표방하는 것에 비해 너무 가볍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유튜브 등에서 활약하는 인플루언서라는 점, 그리고 테이블을 둘러싼 다수의 출연자들이 물고물리는 공방을 벌인다는 점에서 진지한 법리적 다툼보다 법정, 법률을 경유해 가족예능의 자극과 토크쇼의 볼거리로 풀어내려는 흐름이 보인다.
예를 들어 <안방판사>는 지난 21일 방영한 5화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다뤘다. 그런데 실제 직장 내 괴롭힘은 발생 순간부터 분리를 원칙으로 할 만큼 당사자와 조직에는 심각한 문제인데, 웃는 분위기 속에서 당사자들이 관찰 카메라도 함께 찍고 스튜디오에도 나란히 나와 일종의 브로맨스처럼 비춰진다. 물론 이 방송을 통해 잘 몰랐던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 정의와 범위, 법리적 해석에 대해서 알아갈 순 있지만, 관심을 갖고 몰입하기에 사연의 진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법정의 판결과 변론도 이미 김빠진 사이다다.

따라서 법률 지식을 제공하는 가치를 내세우고, 실제 사연을 다루지만, 정작 채워가는 재미는 중간중간 토크 과정에서 만드는 웃음에 초점이 맞춰진다. 특히 <안방판사>는 주로 ‘이혼’과 ‘가족’ 문제에 천착하며 중장년 시청자층을 타깃으로 삼는 가족예능의 변형된 형태로 돌파구를 찾는다. 부잣집 관찰 카메라, 남녀 역할 간에서 오는 가정 갈등, 이혼 소송에 대한 정보 등 자극적인 사례와 에피소드를 펼친다.
그도 그럴 것이 법정 풍경을 가져오는 예능이나 변호사들이 활약하는 프로그램이야 수도 없이 많고, KBS Joy <코인 법률방>, IHQ <변호의 신>와 같은 시도가 간간이 이어졌다. 허나 법률 예능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는 없다. 특히 <코인 법률방>은 높은 변호사 수임료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단돈 500원으로 법률상담을 해주는 선한 영향력으로 좋은 평을 받았으나 낮은 시청률 탓에 흐지부지 폐지됐다.

이를 통해 법률 예능에 도전하는 제작진 입장에서 구체적 법률 정보 제공이란 공적 가치와 대중성이 비례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무겁거나 사회적으로 첨예한 주제인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크고, 당사자들이 있다 보니 판결을 알렉산더 왕처럼 날을 세워 단칼에 뚝딱 해결을 볼 수 없다. 그러니 고소라고 표현하는 갈등 사연은 주제어를 제시하는 정도의 역할이고, 관찰카메라와 토크에서 나오는 케미스트리와 웃음에 집중한다. 실제 갈등이나 사회적 공분을 얻을 수 있는 문제적 상황을 방송에서 드러낼 사람을 찾아야 하는 가장 어려운 미션은, 인지도와 홍보의 기회를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대체한다. 이 부분은 두 프로그램이 다시 한 번 겹치는 신 풍속도다.
<지옥법정>은 첫 회부터 유튜브 세계에서 발발한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권아솔과 명현만의 갈등에 국자만한 숟가락을 얹더니, 유튜브 채널 <충주시>의 인지도 덕을 보려는 등 인플루언서의 호감도나 노이즈를 노골적으로 활용하려한다. <안방판사>도 마찬가지로 유튜버로 유명한 변호사들부터 유튜버이자 셀럽이라 할 수 있는 몽순임당, 안대장TV, 가나쌍둥이 등의 인플루언서 출연자를 카드로 썼다. 출연자와 방송의 경우 인지도와 홍보를 교환한다는 측면에서 윈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치명타다. 진정성이 결여된 상황과 갈등에 몰입하는 사람만 한심하게 만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법률 콘텐츠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공감대를 마련하거나 자극이 필요하다. 두 프로그램 모두 법정 드라마의 인기에서 기획을 착안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법정 드라마가 대유행한 이유는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2022년 드라마 시장을 키워드로 정리하면 법정물의 시대와 정의구현이다. 조금씩 배경과 이야기가 다르긴 하지만 법을 통해 성장하고, 위로받고, 정의를 실현하는 권선징악 구조와 해피엔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안방판사>는 파일럿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다. 공부를 시켜주는 것도 좋지만, 정의구현, 사회적 약자의 편에 당당하게 서주는 휴머니즘 같은 최근 법정 드라마의 흥행코드에 비춰볼 때 대중은 현재 법이 현실의 문제를 담지 못하는 부분, 놓치고 가는 지점들에 대해 함께 소리치고, 더 나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능성을 원한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 편에 서 줄 수 있는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즉 드라마들은 공감대로 승부를 봤는데, 2023년 초에 찾아온 두 법률 예능은 모두 가벼움과 자극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이미 <사랑과 전쟁>, <애로부부>를 비롯해 온갖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유튜브가 있는 마당에 법률을 예능으로 배우고, 요지경 세상을 굳이 예능의 모의법정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안방판사>의 홍진경은 방송 중에 “법이 디테일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그걸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라는 말을 했다. 법이 아니라 방법을 원한다. 답은 이미 나온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S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