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16기, 카메라가 일상인 시대의 리얼리티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테이프 깔까?” ENA, SBS플러스 <나는 솔로> 16기에서 사건의 진상을 알고픈 광수는 사실을 부인하는 영철에게 정 그러면 찍은 영상을 같이 돌려보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옥순과 별 문제 없이 관계를 진전시키고 있던 광수가 흔들리게 된 건, 다름 아닌 주변사람들이 근거 없이 내뱉은 말들 때문이었다. 영철은 “옥순의 마음이 영수”라는 식의 뉘앙스로 말했고, 마침 그날 데이트를 하게 된 영숙 또한 광수에게 “경각심”을 가지라며 옥순의 마음이 영수쪽으로 기울었다는 식의 말을 했다.

하지만 영철과 영숙의 이런 말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그들의 ‘뇌피셜’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광수에게 전한 정보는 ‘가짜뉴스’처럼 기능했다. 흔들린 광수가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리셋됐다며 다음날 남자들이 선택하는 데이트에서 옥순이 아닌 순자를 선택한 건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그의 성급함이 만들어낸 비극이지만, 이를 부추긴 건 무책임하게 조언이랍시고 광수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영철과 영숙의 책임 또한 있었다.

그 전후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광수는 영철에게 왜 그런 식의 이야기를 했느냐고 따졌지만, 영철은 그런 이야기를 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광수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했다. 결국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프레임 안에 들어있던 광수가 그 카메라를 깨고 바깥으로 나오는 발언을 했다. “테이프 깔까?” 그리고 이 발언은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에 나갔고 심지어 동영상 예고편 썸네일을 장식했다.

사실 광수가 처한 비극이나 그의 성급함 혹은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얇은 귀 그리고 그를 그런 식으로 몰아가게 만든 주변 인물들 중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가를 따지기는 어렵다. 이들은 모두 절박한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에 나왔고, 짝을 찾으려 노력했다.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만남들 속에서 꽤 많은 일들이 벌어졌으니 모든 걸 기억하기도 어렵고 무슨 이야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튀어나왔는지도 알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 주변사람들의 말 몇 마디가 만들어낸 파장이 어엿한 커플이 될 수도 있던 관계를 순식간에 박살내 버리는 과정에 시청자들은 과몰입하게 됐다. 가짜뉴스니 뇌피셜이니 하는 말들이 동원됐는데, 그건 시청자들 역시 이 프로그램을 관찰자 입장에서 들여다보며 사회관계 속에서의 말과 행동들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가를 다소 관조적으로 바라봤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광수가 “테이프 깔까?”하고 말하며 제작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 장면이 흥미로운 건 이제 우리가 얼마나 카메라가 일상인 시대에 들어와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카메라가 드리워지면 그 앞에 서 있는 인물들은 어딘가 이를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평상시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워하곤 했다. 하지만 광수의 말처럼, 이들은 카메라가 옆에 있어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아가 필요할 때는 카메라를 하나의 도구처럼 이용하려 하기도 한다. 그만큼 카메라가 옆에 있어도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피사체 역할에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카메라에 찍힌 걸 확인해보면 된다는 식의 촬영자의 시선 또한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들 역시 그저 수용자 입장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작진이 된 것처럼 그 안에 개입하고 싶어 하고 출연진들은 보지 못했지만 관찰자 입장으로 모든 걸 봤던 그 사건의 진상을 밝혀 저들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게시판에 갖가지 시청자들의 목소리들이 채워지고 그것이 논란으로도 이어지는 건 그래서다. “테이프 깔까”는 광수만의 욕망이 아니라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끼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나는 솔로> 16기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건, 그 논란만큼 과거에 누가 어떤 말들을 했는지를 되돌려 보고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는가를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으로 볼 수 있어서였다. 우리가 흔히 우연이나 운명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어떤 작은 말이나 행동 또는 선택에 의해 일어나고 그것이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나는 솔로> 16기의 이야기가 확인하게 해줬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전 포인트는 이제 카메라 앞에서 피사체가 되는 것에 익숙해진 데다, 카메라로 찍는 일 또한 일상이 된 시대가 만들어낸 리얼리티의 신세계다. 연애를 매개로 하고 있지만 실상 <나는 솔로>는 다양한 성격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솔로나라라는 공간에서 벌이는 관계를 내려다보는 리얼리티의 때론 달콤하지만 때론 씁쓸한 세계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우리의 눈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관계의 리얼리티를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카메라가 하나하나 비춰줌으로써 볼 수 있게 해주는 신세계라고나 할까. 그래서 시청자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어 한다. 프로그램 안에서만이 아닌 바깥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이어지고 거기에 대해 출연자들 역시 프로그램 바깥에서 사과를 하거나 심경을 드러내는 2차 리얼리티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카메라 안과 밖이 갈수록 투명해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 접점으로 뜨거운 논란들이 스파크를 튈 때마다 <나는 솔로>에 더욱 그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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