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의 연기 앙상블이 만든 시너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평일에도 3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어 곧 400만 관객을 향해 갈 것으로 보인다. ‘범의 허리를 끊은 여우’의 과거사를 파내고 그 실체를 드러내 제 자리를 찾겠다는 영화의 의지 때문일까. 이로써 끊어진 민족정기를 잇겠다는 열망이 나라를 위해 일제와 맞서다 먼저 떠난 구국선열들의 영혼에 닿은 것일까. 마침 3.1절 연휴라는 순풍이 솔솔 불어온다. 이 기세대로라면 500만 관객을 무난히 넘어 한국형 오컬트 <곡성>이 거뒀던 680만 관객 기록도 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저 단순히 일제 잔재의 청산을 담고 있다고 해서 3.1절 같은 호재가 어떤 성과로 나오는 건 아닐게다. 먼저 영화가 재밌어야 하고 잘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제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그게 영화적 메시지로 완성도 높게 담겨지지 않으면 자칫 ‘국뽕’의 차원에 머물 수 있다. 지금은 그런 게 먹히는 시대가 아니다. 대중들이 영화를 보고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 전제되어야 하고, 주제의식 역시 그 재미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어야 의미도 수용될 수 있는 시대다. 3.1절이 <파묘>에 호재가 될 거라 판단하는 건, 이런 전제조건들이 이미 갖춰진 작품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파묘>는 무당과 풍수사 그리고 장의사가 등장하고 있고 이들이 귀신 같은 존재들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라 오컬트 장르의 색깔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컬트 특유의 마니아적 공포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케이퍼물 같은 오락적이고 대중적인 장르적 서사로 그려진다. MZ세대 무당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꼰대 같지만 어딘지 정감이 느껴지는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만나 묫바람 난 집안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미션 구조가 들어있다. 그래서 오컬트 같은 공포물을 꺼려하는 관객들도 이들 ‘묘벤져스’를 따라가면 좀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놨다. 물론 오싹한 오컬트 특유의 맛은 여전하지만.
묘를 ‘파낸다’는 그 공포 가득한 행위를 통해, 묻혔던 일제 잔재의 과거사를 파헤친다는 의미망으로 확장해낸 장재현 감독의 관점이 먼저 관객들의 마음을 잡아끈다면, 그 파헤치는 일련의 과정들을 흥미롭게 따르게 만드는 건 묘벤져스들의 넘치는 개성들이 중요한 몫을 한다. 이들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를 아우르고, 영화가 갖고 있는 진중한 무게감과 경쾌한 발랄함의 균형을 잡으며, 관객을 긴장시키고 이완시키는 역할들을 수행한다.

세대로 보면 MZ세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젊은 세대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굿을 하는 장면에 들어가서는 본연의 직업적 색깔을 드러내지만, 일상 속에서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평범한 MZ세대 그대로다. 그건 스타일로도 구현되어 있는데, 화림은 롱 가족코트를 입고 다니며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도 자신을 일본인으로 착각하는 스튜어디스에게는 분명히 한국인이라 말하는 똑부러지는 모습이다. 화림과 함께 굿을 도와주는 봉길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설정답게 잘 단련된 온몸에 부적처럼 써진 문신에다 길게 자란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이다. 젊은 세대들의 스타일리시한 면모들이 이 두 신세대 무당으로 표현되어 있다.
반면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은 이 직업이 현재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인물들로서 양복 차림에 막걸리를 즐겨마시는 기성세대 베테랑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돈냄새’로 화림, 봉길과 함께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후세가 밟고 살아가야할 땅을 위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옛스러운(?) 면들을 드러낸다. 꼰대스러운 면이 있지만 또한 존경할만한 면들도 공존하는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묘벤져스는 현재적 가치와 과거의 가치가 균형을 맞추고, 끊긴 민족의 정기를 잇는다는 공통의 목표 앞에 세대를 넘어 통합된 힘을 발휘하기 위한 인물 구성이 되어 있다. 이들이 함께 잇는 것은 그래서 마치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뉘앙스 또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극의 무게감을 기준으로 보면 화림과 상덕이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진지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반면, 영근 같은 인물은 그 긴장을 순간순간 풀어주는 해학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여기에 봉길은 화림을 돕던 인물에서 ‘험한 것’이 빙의되며 변화하는 인물로서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캐릭터가 된다.
이처럼 묘벤져스에 부여된 세대와 역할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는 대목은 <파묘>가 궁극의 서사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이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이 살벌한 오컬트의 세계를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게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나 할까. 그저 국뽕의 차원이 아닌 진짜 재미와 의미가 잘 엮어진 <파묘>에 3.1절이라는 호재가 특히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컬트의 오싹함을 이토록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묘벤져스가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파묘>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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