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영화 '아노라'
영화 '아노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2025년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2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개최됐다.

올해의 주인공은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을 받았다. 션 베이커는 여기서 여우주연상을 제외한 네 개 부분의 상을 거머쥐었다. 한 해에 한 사람이 네 개의 상을 받은 것은 지금까지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일이다. 지금까지 아카데미상과 전혀 인연이 없는 감독이 갑작스럽게 거둔 성과라 그 결과는 더욱 낯설어 보인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영화 '브루탈리스트'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졌던 브레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는 촬영상, 남우주연상, 미술상을 받았다. 이 영화가 막판에 인기를 잃은 이유로 배우의 헝가리어 발음 교정과 미술 부분에 AI가 사용되었다는 게 지적된다. 미술 부분에 대해서는 정보가 갈리니까, 발음 교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자. 과연 테크놀로지를 통한 연기 교정이 나쁜 일인가? 이미 배우의 연기는 스턴트 더블, 컴퓨터 그래픽에 의해 교정되고 있다.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 상당수는 더빙이었다.

사람들의 착각과는 달리 완벽한 외국어 구사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기술을 통해 교정하고 남은 시간에 더 중요한 연기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은가? 그건 그 언어를 이해하는 관객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외국인이 자기들의 언어에 유창한 척 흉내내는 걸 듣는 건 괴롭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자크 오디아드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는 주제가상과 여우조연성을 받았다. 이 작품은 올해 후보작 중 가장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은 영화이다. 프랑스 감독인 자크 오디아드가 멕시코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이야기를 위해 그 나라의 문화를 착취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가장 그 이유이다. 멕시코 영화이면서 새 주연 배우 중 어느 누구도 멕시코 억양을 쓰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된다. (멕시코에서는 셀레나 고메스의 억양을 놀려대며 흉내내는 게 요새 유행이라고 한다.) 영화의 트랜스젠더 묘사도 지적되고 있는데, 하여간 자크 오디아르는 아마 지금 많이 당황해하고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세계의 사람들을 대범한 터치로 그려내는 것은 이 감독의 장기이고 특징이다. 한마디로 늘 해왔던 게임이다. 아마 이성애자 유럽 백인 남성이 이야기꾼으로서 당연하게 누렸던 이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그와 별도로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위의 지적들은 모두 옳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 부분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이 영화의 오페라적 과장과 우스꽝스러운 그로테스크함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뮤지컬과 오페라를 더 보아야겠지만. 매끄럽고 그럴싸하고 잘 만든 것처럼 보이는 것들만 예술의 정점에 있는 건 아니다.

영화 '서브스턴스'
영화 '서브스턴스'

최소한 두 개는 받고 갈 거라고 생각했던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서브스턴스>는 분장상 하나만 받았다. 다들 이 영화의 데미 무어가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여우주연상은 <아노라>의 마이키 메디슨에게 돌아갔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이키 매디슨이 <아노라>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며 연기는 일대일로 줄을 세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게 <서브스턴스>의 연장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맹렬하게 활동하는 두 프로페셔널한 배우를 오로지 <서브스턴스>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구로만 삼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 대해 무례한 일이다.

남우조연상은 제시 아이젠버그 감독의 <리얼 페인>에 나왔던 키어런 컬킨이 받았다.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이고 이 영화에서 컬킨이 보여준 연기의 가치와 매력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제시 아이젠버그의 각본 역시 빼어났다. 단지 <리얼 페인>이나 <브루탈리스트>와 같은 유대계 정체성을 다룬 최근 영화들을 보면 뭔가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리얼 페인'
영화 '리얼 페인'

예를 들어 <리얼 페인>은 80년 전 있었던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보편화하기 위해 르완다 내전을 끌어들인다. 충분히 할 법한 시도다. 하지만 르완다는 이미 과거의 비극을 극복하고 정상국가로서 존재한자 몇십 년이 지났다. 80년전 홀로코스트와 연결될 수 있는 폭력과 비극은 이 영화와 주제면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현재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르완다는 언급하면서 거기에 대해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정직한 일인가. 이 빈 공간이 정상인가.

기록이 여럿 생긴 시상식이었다. 첫 흑인 남성 디자이너가 <위키드>로 의상상을 받았고, 라트비아와 브라질 영화가 처음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블렌더로 만든 라트비아 애니메이션 <플로우>는 픽사나 드림웍스와 같은 거물들을 제치고 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브루탈리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는 절대로 깨질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리어 가슨의 5분 30초 수상소감 기록을 깼다. 5분 40초였다고 한다. 단지 그렇게 길게 할 이야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소감 후반은 나름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주민 추방을 다룬 다큐멘터리 <노 아더 랜드> 팀의 수상소감을 통해 전달한 단호한 메시지와 비교해보면 박쥐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세상은 더 이상 그냥 좋은 이야기가 통하는 곳이 아닌 것 같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아노라><브루탈리스트><에밀리아 페레즈><서브스턴스><리얼 페인>스틸컷>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