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에 담긴 시대적 의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우리로써는 최초의 기록이고, 아카데미로서도 자국어로 연기한 아시아권 배우로서 처음이다. 그런데 이 최초의 기록은 이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히 받아야할 상을 받은 느낌이랄까.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는 시대적 의미가 담겨진 작품이다. 그건 물론 이민자들의 정착기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는 현재의 다원화되고 다양화된 글로벌 시대에 접어든 문화의 양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작 정이라고도 불리고 정이삭이라고도 불리는 감독의 이름에서부터 묻어나듯, <미나리>는 미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작품 내외적으로 섞여 있는 작품이다.

스티븐 연이나 앨런 김, 노엘 조 같은 미국 사회에 적응한 한국인 2세들이, 한예리, 윤여정 같은 우리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다는 외적 조건들이 그렇고, 이들이 작품 속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쓰며 한국적인 문화와 미국적인 문화가 섞여있는 상황들을 보여주는 내적 조건들이 그렇다. 이처럼 언어와 국적이 교차되며 문화가 얽혀드는 풍경은 지금의 글로벌 콘텐츠 시대를 표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OTT만 열면 우리는 이제 어느 나라의 어떤 언어로 된 콘텐츠들도 바로바로 소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 있지 않은가.

그런데 <미나리>는 그런 다원화된 콘텐츠 시대를 단지 표상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런 시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들 속에서 생존하고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대안까지 제시하는 작품이다. 그건 다름 아닌 미나리라는 물가에 씨를 뿌려 놓으면 어디든 잘 자라, 부자든 가난한 자든 누구나 먹고 건강하게 해주는 풀이 주는 은유에 담겨 있다. 개발되고 남획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과는 상반된 생태적이고 자연적인 삶에 대한 은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윤여정은 다름 아닌 <미나리>에서 그 가족이 위기를 벗어나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미나리 같은 존재를 연기했다. 물론 가족애가 전면에 내세워지고 있지만,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차원을 넘어 인간애로 비춰진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소중한 가치는 결국 생명이라는 걸 오롯이 이 연기자는 순자라는 인물에 투영해낸다.

그래서 이 작품과 윤여정이라는 인물은, 아시아를 향한 혐오범죄가 극성을 피우고 있는 현 미국사회의 위기에도,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인들이 처한 위기에도, 나아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진 한계에도 그 자체로 대안으로 제시된다. 특히 <미나리>를 이토록 생동감 있게 해석하고 표현해낸 윤여정에 아카데미(는 물론 유수의 영화상들이)가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또한 <미나리>는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오히려 가치를 드러내는 로컬 문화의 힘을 전면에서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OTT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만들어낸 역설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 로컬 문화로서 K콘텐츠의 입지는 이제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올해 <미나리>의 윤여정으로 이어지며 더욱 공고하게 됐다. 한국인이라면, 특히 K콘텐츠 관련 종사자들이라면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미나리>스틸컷,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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