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 김명민 아니면 이게 가능했겠나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못 생긴 것도 아니지만 그리 잘 생긴 외모라고 말하긴 어렵다. 적어도 요즘처럼 김수현이나 이민호처럼 그 외모만으로도 여심들을 마구 뒤흔드는 꽃미남 배우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목소리 하나만은 타고 났다. 중저음이 지긋이 깔리는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배우의 반은 목소리가 만든다는 얘기처럼 김명민의 연기에 대한 신뢰는 상당부분 이 목소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김명민의 몰입은 자신을 온전히 지워내고 배역을 전면에 드러낸다. <개과천선>의 시작을 생각해보라. 김명민이 연기한 김석주 변호사는 차영우펌의 에이스로서 이기기 위해서는 윤리니 도덕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처박는 인물이었다. 보기만 해도 침을 뱉어주고 싶은 대기업 자본의 대변인이자,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실종된 그런 인물.

그런데 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물이 사고를 통해 기억을 잃게 되면서 보이는 얼굴의 변화를 떠올려본다면 그것이 같은 김석주가 맞는가 생각될 정도다. 외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연기다. 이를 위해 김명민은 초반부 얼굴 근육을 잔뜩 긴장시킨 무표정을 선보이다가, 사고 후부터는 얼굴 근육을 이완시켜 심지어 바보처럼 입이 헤 벌어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종반에 이르면 김석주 변호사는 초반에서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게 된다. 자신이 에이스로 있으면서 사실상 자신이 만들어놓은 작업들로 굴러가는 차영우펌과 이제는 180도 반대방향에 서서 싸우는 형국이다. 자신이 자신과 싸우는 이 모습은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개과천선>은 제목이 말해주듯 능력이 아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삶과 사회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김명민의 물 흐르듯 변화하는 인물 연기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도무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김석주라는 인물은 아버지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연인과의 관계로 얽혀져 있다. 인물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석주가 한 때 소원했던 아버지와 화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깊은 감동을 만들어주었고, 기억이 사라져도 여전히 변함없이 옆에 남아 그를 돕는 박상태(오정세)의 우정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또한 과거에는 그저 약혼자로서 형식적 관계처럼 유지됐던 유정선(채정안)과 차츰 마음을 나누는 관계로 변화하는 모습 역시 시청자들을 설레게 해주었다.

냉철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 김석주 변호사가 대중들의 판타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다. 야누스처럼 변하면서도 그 변화 과정이 전혀 이물감 없이 자연스러운 그 연기가 있어 김석주 변호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 믿고 보는 배우 김명민의 진가는 <개과천선>을 통해서도 여지없이 드러난 셈이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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