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메이트’ 변명 여지없는 어정쩡한 청춘물의 한계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주말 대형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룸메이트>는 지난 11월 편성시간을 옮기면서 생명을 연장했다. 화요일 11시에 주말예능의 스케일로 승부를 보는데 더 이상 변명의 여지는 없다. 무조건적인 반등을 기대했다. 왜냐면 JTBC(<님과 함께>가 12월 2일자로 화요일로 넘어오긴 했지만)와 tvN 예능의 사각지대이자 동시간대 타사 공중파 예능들도 가족 및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소소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콩알 같던 시청률은 반쪽이 됐다. 게스트로 한때 잘나가던 아이돌 구하라를 불러 춤까지 시원하게 췄으나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젊은 세대 맞춤용 프로그램이다보니 가족단위 시청자들이 몰려 있는 주말 오후시간대를 벗어나면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직전에 화요일 밤에 방송되던 <매직아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즌2를 시작할 때만 해도 <룸메이트>의 기세는 괜찮았다. 출연자 인지도는 시즌1 멤버에 비해 떨어졌지만 이국주, 박준형처럼 알아서 웃음과 그림을 만들 수 있는 멤버들이 대폭 늘었다. 그래서 마음먹고 보고 있으면 그럭저럭 볼만하다. 새로 투입된 허영지와 잭슨 ‘막내 콤비’의 투닥거림은 꽤나 귀엽다. 예쁘고 잘생긴 아이돌이라기보다 실제 그 또래 친구들을 보는 듯한 풋풋함에 반응도 좋다. 관찰형 예능의 한 요소인 엿보기 측면에서도 좋은 집과 연예인들의 공동생활이란 볼거리가 풍부하다. 거기에 심지어 구하라, 홍석천, 박진영과 JYP사단 등 게스트가 매번 찾아온다. 공동생활을 바탕으로 한 <헬로 이방인>이 최근 시작된 것에서 볼 수 있듯 기획 의도 자체는 여전히 트렌디하다.
그럼에도 <룸메이트>의 거실로 시청자들을 초대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 칼럼을 쓸 생각이 없었다면 필자 또한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이들이 두부 만드는 걸 보느라 TV 앞에 있지 않았을 거다. 근본 이유는 이렇다. <룸메이트> 멤버들의 공동생활을 왜 봐야 하는지 시청자를 설득하거나 유혹할 만한 한 줄이 없다. 이들이 함께 사는 이유에 대해 시청자들은 아무런 의미와 공감대를 찾을 수 없게 되면서 점점 무관심해졌다. 단순하게 말하면 연예인 룸메이트라는 설정이 잘 먹혀들지 않는 거다.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지를 짚어보려면 제일 처음 시작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룸메이트>의 제작방식과 새로운 주거 문화를 가져와 체험한다는 기획의도는 분명, 당시 대세였던 관찰형 예능의 그것이다. 그런데 제작진이 풀어가는 방식은 청춘 시트콤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구심점 역할을 할 주인공의 존재와 같은 기본 구도 하에 스토리텔링에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이야기가 재밌으면 의미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출연자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던져두고 촬영한 날것의 재료로만 청춘물의 속을 채워가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출연자들은 당연히 생활이 아니라 방송을 했다. 실제로 함께 살면 일어날 법한 여러 에피소드들은 잘 나오지 않았고, 조세호와 나나의 러브라인처럼 쉽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는 금방 동나버렸다. 이건 당연한 결과다. 드라마가 재밌기 위해선 작가의 역량이 절대적인데, 스토리텔링에 대해 조금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꾸려야 하는데, 주어진 재료로는 도저히 엮을 수가 없으니 ‘미션’이나 이벤트가 주어진다. 이번 주는 선물을 받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림에 한계가 있으니 점점 집 밖으로 나가게 되고, 게스트가 찾아온다. 황학동 시장을 소개하듯 돌아다니며 턴테이블과 LP판을 사고 으레 그렇듯 젊은 친구들이 그런 곳에서 잘 어울리고 즐기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스트 홍석천은 요리와 춤 솜씨를 뽐내고 성공을 구가하는 이면의 자기 속 이야기를 들려줬다. 각자의 캐릭터를 가진 수많은 등장인물은 있지만 그것을 엮는 스토리가 없다보니 매일매일 이런저런 것들을 보여주기로 급급하게 흘러간다. 이는 <헬로 이방인>도 똑같이 겪는 문제다.

산만하다는 평가는 이런 문제의 축약된 표현이다. <룸메이트>를 설명할 한 줄이 없다보니 관심과 애정을 갖기 힘들고, 스토리와 맥락이 없으니 당연히 재미가 없다. 여자 아이돌 어벤져스팀 같았던 <청춘불패>의 실패에서 보듯이 구슬을 모아놓는다고 사람들도 모이지 않는다. 꿰어 놓아야 목에 걸어볼 생각이라도 한다. 보여주기만 해서는 방송 속의 화목한 분위기와 에너지가 시청자들에게 전이가 되지 않는다. 함께 살게 되어서 설레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감정들이 시청자와 교감을 하면서 커져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보여주기만으로는 의미와 공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결국 아무리 성북동 식구들끼리 행복하게 잘 지내도 시청자들에겐 편안한 친구 집 같지가 않은 거다.
잘 되는 예능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방송을 보고 얻어갈 게 하나라도 있어야 계속 시청한다. <룸메이트>는 진정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청춘남녀들이 함께 살면 재밌을 법한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것도 아니다. 왜 그 집에 모여 있고,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지, 멤버들은 각자 어떤 관계와 숙제를 갖고 있는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다 보니 청춘 시트콤의 감성도, 관찰형 예능의 재미도 현재는 찾을 수 없다. 어떻게 재밌게 할 수 있을까보다 우리 집엔 무엇이 있을까? 라는 고민이 절실해 보이는 시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