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숭아학당’으로 생각하는 트로트 예능의 품격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단일 예능으로 36%가 넘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TV조선 <미스터트롯>은 방송을 넘어 우리나라 대중문화사를 바꾼 이정표다. 트로트를 예능과 공연 시장의 주류 콘텐츠로 끌어올렸고, 그 전까지 매달 월세내기를 전전긍긍하던 흙속의 진주들을 단숨에 일약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냈다. 그것도 여럿을 동시에. 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높아진 피로도에 결과조작이란 파문까지 덮치며 사장될 뻔한 오디션예능의 운명을 지옥불 앞에서 돌려세웠다. 덕분에 노래 재능을 꽃피울 새로운 무대가 우후죽순 올라가고 있고, 설운도, 김연자, 주현미 등 트로트 중진들부터 평소 예능 활동을 활발히 하는 홍진영, <미스트롯> 출신들은 물론 유재석까지 그 영향 속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미스터트롯> 열풍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그 인기와 파급력이 업계 전반으로 번져나간 효과다. 자체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걸 넘어 무려 15%라는 숫자를 찍은 지난주 <아는 형님> 시청률이 말해준다. 프로그램 자체가 흥하고 스타가 탄생한 적은 이전에도 왕왕 있었지만 출연자들이 얼굴만 내비치는 것만으로 기존 시청률 추이를 파괴할 만큼 파괴력 있는 단일 프로그램은 없었다. 이미 종영한 지 2개월째지만 그 파급력은 전혀 줄지 않았음을 매일매일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앞서 시청률 치트키로 활약한 <미스트롯> 출신 송가인의 돌풍보다 거세고 끼치는 범위가 넓어졌다. 송가인, 홍자, 숙행 정도만 활발히 예능활동을 펼치며 팬덤이 나뉘었던 <미스트롯>에 비해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은 패키지로 함께 나가 캐릭터쇼의 즐거움까지 선사하며 그 힘을 지키고, 심지어 키워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대단한 인기와 영향력으로 초유의 현상을 목격하게 하는 <미스터트롯>이지만, 무조건적인 지지, 시대를 바꾼 예능으로 추켜올리기에 다소 난감한 지점이 있다. 첫 번째는 출연자들에 대한 온당치 못한 처우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성공의 맛을 본 제작진의 노골적인 항해술에 대한 반감이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방송계의 격언이 있지만, 아무리 쓰나미급 파도라고 해도 과한 면이 분명 있다. 방송가에선 약효가 보장된 시청률 주사를 피할 이유가 없지만, 매니지먼트 관점에서 기획보단 소모에 가까운 관점에서 이들을 활용한다.

예능 순회는 물론이고, TV조선에서만 해도 <아내의 맛>, <사랑의 콜센터>에 이어 이번 주 첫 방송한 <뽕숭아학당>까지 기획의 힘보다는 <미스터트롯>의 인기와 신선함에 기댄 콘텐츠를 빈틈없이 편성했다. 게다가 무려 2시간 반에 이르는 유럽 예술 영화보다 훨씬 긴 방영시간 동안 빈틈없이 달리는 호흡이 EDM급이다. 노래, 토크, 경품, 감동사연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은 뽕필BPM을 낮추는 법이 없다.

<뽕숭아학당><미스터트롯>의 이른바 F4인 장민호, 영탁, 임영웅, 이찬원이 교복을 입고, 전속MC가 된 붐이 담임선생님이 되어 이들을 인솔해 트로트 국민 가수로 거듭나기 위해 레전드를 만나 수업을 받는다는 콘셉트의 예능이다. 특별한 기획의 맛이 돋보이기 보다는 간결한 스토리라인의 몸집 가볍고 익숙한 볼거리다. 다만, 시청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아는 제작진은 밝은 분위기와 웃음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약간의 복고 코드와 회심의 콘텐츠인 효심을 부각해 신선함을 부여했다. 1회 게스트로 모신 어머니들은 엄마만 아는 비하인드 스토리, 추억보따리를 가져와 팬들에게 기존에 보지 못한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눈물과 감사도 빼놓지 않는다. 그간 자식 때문에 고생한 어머니들에 대한 진심어린 효심과 사랑을 눈물 스민 노래로 전한다. 이찬원은 코로나19 때문에 녹화에 참여하지 못한 어머니와 영상 통화를 하며 엉엉 울다 봉선화 연정을 사모곡을 바쳤다. 그리고 이어진 영탁, 장민호의 무대에서도 또 한 번 울음바다가 번지며 붐을 비롯해 함께한 출연자들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과 사랑의 감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나 버라이어티한 구성이었다. 제작진은 타깃 시청자가 누구이고 그 페르소나가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뽕숭아학당>이 방송 전부터 회자된 건 <미스터트롯>의 후속 예능으로 받은 기대 때문이 아니다. SBS의 히트 트로트 프로그램인 <트롯신이 떴다> 시간에 편성하면서 상도덕 문제가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방송가의 불문율인 동시간대 출연자 겹치기를 그것도 트로트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강행하기로 하면서다. 그 결과, 같은 <미스터트롯>의 갈라쇼 프로그램이지만 2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사랑의 콜센터>에 비해 저조한 13%대 시청률로 시작했는데, 다음 회에 예고된 백지영처럼 색다른 조합이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면 또 한 번 출연자들의 노래 솜씨에 기댄 이 프로그램으로 팬덤을 넘어선 시청자들을 끌어올 수 있을지, 그 다음을 기대하는 볼거리가 나올지 의문부호도 생긴다.

빠르고 가벼운 기획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해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TV조선의 행보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너무 노골적이면 아무래도 반감이 들기 마련이다. 모터 달린 듯 젓는 노질로 인해 트로트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가져온 대단한 행보가 품격의 문제로 인해 오롯이 평가받기 어려운 분위기를 스스로 조성하고 있다. 아무리 긴 줄을 서는 맛집이라도 너무 장삿속을 내비치면서 손님을 받으면 진심으로 응원하고 소개하기란 껄끄러워지기 마련이다. 계속해 만나는 반가움도 좋지만, 길게 보는 안목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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