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달라진 김구라, 과연 독설 없는 순한 맛으로 순항할 수 있나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담하기)] MC 김구라가 달라졌다. MBC 예능 <라디오스타>는 김구라가 현재의 입지를 굳히게 된 간판 프로그램이다. MC들이 게스트를 토크로 물어뜯는(?) 프로그램 콘셉트로 큰 인기를 누렸는데 최전방 공격수가 김구라였다. 무명 시절 인터넷 방송을 전전하다가 독설 토크라는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지상파에 입성해 이후 <라디오스타>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게 됐다.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에서 게스트 방향이 아니라 90도 정도 의자를 돌려 앉은 자세로 먼 곳을 응시하며 공격적인 토크를 던져 웃음을 만들어냈다. 김구라의 독특한 진행 모습은 게스트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는데 공격적인 토크 내용과 어우러지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박진영은 이런 모습에 대해 지난달 12<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김구라가 센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을 보면서 하는 모습을 못 봤다...그건 마음 약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호의적으로 평했다. 박진영의 말에 동의하든 아니든 시청자들은 김구라의 자세나 토크 내용을 진심 담은 모욕이라 여기지 않고 웃음 유발 장치로 받아들이면서 즐겼다.

김구라의 독설은 게스트의 개인적 결함을 공격하기보다는 허위의식이나 허세가 게스트에게서 드러난 지점을 풍자로 겨냥하거나, <라디오스타>에 연예인으로 성장을 원하며 출연해서는 허술한 모습을 보이면 개선을 자극하는 재미의 수단 등으로 사용됐다. 게스트 말을 끊는 것도 늘어지는 토크를 막으려는 것이라는 김구라의 설명이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김구라가 최근 들어 자세가 바뀌었다. 의자를 틀어 앉지 않고 똑바로 앉고 있다. 그런데 가끔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의자를 돌리지 않는 상태에서 목만 돌려 먼 곳을 바라보기는 한다. 하지만 기본자세는 정면을 고수한다. 그러다 보니 김구라 목에 담이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편해 보이지 않는다.

자세만이 아니다. 토크도 독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심지어 게스트를 챙기고 위로하는 말도 자주 던진다. 김구라가 순한맛으로 변한 것이다. 2일 방송분에서는 과거 김구라 독설의 대표적인 샌드백이었던 개그맨 유상무가 오랜만에 출연해 ‘(김구라가) 정말 착해졌다는 말을 거듭했을 정도다.

김구라의 순화로 요즘 <라디오스타>의 재미도 강도가 약해진 느낌이다. 물론 변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을 갖고 순한맛 모드 조율을 마치면 그 틀에 맞는 큰 재미를 이끌어낼지도 모른다. 김구라의 또 다른 강점인 풍성한 잡학지식이나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큰 웃음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김구라는 독설이 근본 정체성이었다. 다른 MC나 개그맨들에게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변화일 수 있지만 김구라는 다를 수 있다. 김구라에게는 일생일대의 변화일 수도 있는 이 시도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추정이기는 하지만 최근 남희석의 저격과 김구라의 변화는 시기가 맞물린다. 남희석은 최근 자신의 SNS에 김구라를 향해 초대손님의 말이 본인 입맛에 안 맞으면 등 돌린 채 인상 쓰고 앉아 있다. 자신의 캐릭터지만 배려 없는 자세라며 공개 비판했다.

이어 콩트 코미디로 떠서 <라디오스타>에 나갔다가 망신당하고 밤에 자존감이 무너져 나를 찾아온 후배들을 봐서라도 그러면 안된다. 약자들 챙기시기를이라고 추가 저격했다. 이에 대해 김구라와 <라디오스타>그렇지 않다. 캐릭터일 뿐이라 해명했고 남희석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 여론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김구라의 모습은 변했다.

남희석의 말이 모두 맞아서 변화를 택한 것은 아닐 듯하다. 그보다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라 설명할 수 있는 여론 흐름이 적극성을 높이고 있다. 방송에 대해서도 소수자나 약자를 차별하고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강력한 항의 여론 형성으로 출연자와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는 모든 영역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가치다. 그런데 예능에서 적용을 놓고 논의를 하면 결론이 복잡해지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존중 분위기가 훨씬 정착된 미국이나 유럽의 토크쇼나 코미디에서 강도 높은 독설은 여전히 웃음의 소재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재미의 장치로 쓰이는 독설이 약자일 수도 있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정은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국사회에서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존중은 분명 더 뿌리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김구라는 본질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 새로운 변화를 택한 듯하다.

이 문제는 한편으로 한국 예능 모두에게 해당되는 고민거리일 수도 있다. 예능과 도의적 올바름의 공존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궁금하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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