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전설의 19기 개그맨 게스트들이 웃기고 감동적인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최근 MBC 예능 <라디오스타>는 안영미 영입 이후 안정적인 구도를 이뤄낸 지 좀 되었다. 하지만 그 안정감은 종종 아쉬움이 될 때도 있었다. <라스>만의 막 나가는 에너지가 뿜어 나오던 때가 그립다는 말은 아니다. 예능의 분위기도 바뀌었고, 이전처럼 타인을 비하하고 꼬집는 유머의 시대는 아니니까.

다만 <라스>가 평범한 홍보방송 예능처럼 느껴지거나 한 주 한 주를 채우기 위한 예능처럼 다가오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특히 과거와 같은 시청률을 뽑아내지는 못해도 <라스>는 여전히 MBC의 장수 예능이고, 그렇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20213월의 마지막 밤 <라스>는 오랜만에 <라디오스타> 다웠고 새로운 <라디오스타> 다웠다. 물론 여기에는 한때 <라스>MC였던 유세윤의 8년만의 컴백도 한몫했다. 그 동안 한자리를 스페셜 MC로 채우던 <라스>가 드디어 완전체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를 통해 <라스>는 김구라-안영미의 호흡과는 또 결이 다른, <개그콘서트>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안영미-유세윤의 호흡을 보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김국진을 포함해서 각기 다른 시대의 톱 개그맨들이 MC군단으로 돌아왔다.

그것만으로 3월의 마지막 밤 <라스>가 특별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날은 전설의 19KBS 개그맨 특집으로 유세윤과 안영미의 동기인 황현희, 장동민, 강유미, 정철규가 모두 출동했다. 이들 모두는 블랑카부터 분장실, 소비자고발, 옹달샘 트리오가 선보인 개그들까지 포함해 밀레니얼 세대의 유머코드를 만들어낸 이들이었다.

이들 멤버들이 각자 풀어놓는 에피소드만으로도 <라스>꿀잼은 이미 예약된 상태였다. 하지만 단순히 추억팔이만이 아니라 이들은 19기 개그맨들끼리의 신경전, 질투와 속내까지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안영미의 인기를 질투하던 강유미, 황현희의 외제차에 장동민이 던진 어묵국물 에피소드까지. 물론 개그맨들답게 그 진솔함에 배꼽 잡는 양념까지 더해서 입가에 미소를 떠나지 않게 했다. 심지어 연말대상의 장동민-배용준의 똑같은 드레스코드만으로도 <라스>는 지난 몇 달 동안 가장 웃긴 장면을 선사했다.

3월의 마지막 <라스>에는 웃음만이 아니라 아련한 페이소스가 감돌았다. 지금은 사라진 <개그콘서트>의 마지막 전성기를 보여주던 시절의 그리움 같은 것도 그 중 하나였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누구나 함께 낄낄대고 핑퐁처럼 재치 있는 대화가 오가던 리즈 시절의 우정들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모두들 점잖아지고 서로 눈치를 보는 순간들이 있다. 반짝이던 재치 대신 모두가 안전해지는 인간관계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라스>에서 장동민은 이들 개그맨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대해 말하면서 이제는 점잖아진 친구들의 관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배꼽 빠지는 에피소드에 약간의 씁쓸함까지 토핑으로 얹어진 <라스>는 최근의 예능토크쇼 중 가장 반짝이는 빛을 발했다. 또 전성기의 <라스>처럼 약점을 쿡쿡 찌르며 비웃지 않고서도, 네 명의 개그맨 MC와 입담 좋은 게스트의 조합이라면 충분히 꿀잼의 예능으로 부활 가능하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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