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네’를 보니 지금의 박세리가 멋진 이유 알겠네
‘선미네 비디오가게’가 보여준 박세리의 레전드 영상들

[엔터미디어=정덕현] 박세리가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것은 IMF 시절 맨발로 해저드에 들어가 공을 쳐내는 그 장면이다. 199877일 새벽 US오픈 경기 연장전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장면. 쉽게 이긴 경기가 아니고 연장전까지 가서 끝내 이긴그 경기는 마치 당시 IMF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보였다.

SBS <선미네 비디오가게>에서 그 광경을 다시 보는 박세리의 눈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그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거기에는 그간 그가 해왔던 노력의 시간들과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어려움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서 이룬 성취에 대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늘 좋은 성적을 거둔 장면들만 대중들에게 기억되어 있지만, <선미네 비디오가게>에서 박세리는 그 이면에 많은 실패들과 어려움들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어린 나이에 아마추어로서 프로선수들과의 경기에서도 늘 우승을 했던 박세리.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남모르는 노력이 숨어 있었겠나.

미국 LPGA에 가서도 가장 그가 힘들어했던 건 안 풀리는 경기가 아니라 포기하라는 주변의 목소리들이었다고 한다.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경기 자체보다 힘들었다는 것. 하지만 박세리는 승부사였다. 어려울수록 이겨내려는 의지가 강했다. 특히 2, 3등은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고 오로지 우승을 바라보는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을 보였다. 연장전에만 가면 무조건 이기는 건, 남다른 승부욕이 만든 결과였다.

아마도 그런 면들이 IMF라는 시기에 박세리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을 더욱 크게 만들었을 게다. 어려워도 이겨내는 그 모습은 양희은의 상록수에 담긴 가사 그대로 박세리의 모습으로 각인됐고, 그것은 당대의 대중들에게는 커다란 희망의 메시지였을 테니.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은 일들을 겪었다. 슬럼프에 빠지게 됐고, 언론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박세리를 마구 소비했다. 사적인 공간에 무작정 인터뷰를 하러 들어오고, 심지어 입원해 있는데도 취재 카메라가 들어왔다. 박세리는 당시를 회고하며 그 때 언론이 지금과는 너무나 달랐다고 말했다.

날씬해졌어. 살 많이 빠졌는데?” 귀국하는 박세리에게 대뜸 반말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기자의 목소리는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건 선수 박세리를 대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 몸무게를 묻고 다이어트 이야기를 꺼내며 섹스어필이니 예뻐야 한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나왔던 건 지금으로 보면 성차별에 성희롱에 가까운 일들이 아닐 수 없었다.

박세리 선수에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 던져지곤 했던 여성성에 대한 질문들은 지금 보면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성형수술을 했다는 루머들까지 돌았고 남자를 사귀네, 그것 때문에 경기 성적이 안 좋네 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언론과 방송은 서로 경쟁하듯 박세리를 그런 식으로 소비했다.

그는 결국 슬럼프를 극복하고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후 은퇴했다. 그리고 한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 들어 반갑게도 다양한 방송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그가 보이는 모습들은 여성 스포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것들이었다.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은 이제 그의 도전이 여성과 스포츠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방송국 놈들 가만 안 둬.” 박세리가 종종 유머를 섞어 툭 던지는 이 말은 <선미네 비디오가게>에서 그가 겪었던 일들을 보고나면 더더욱 이해되는 면들이 많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게 남아있는 방송과 언론의 작은 부조리들에 대한 으름장. 그래서 그의 이런 당당한 모습은 마치 1998년 해저드에서 공을 쳐냈을 때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박세리는 <선미네 비디오가게>가 편집해낸 그 비디오의 제목을 세리는 굿세리로 정했다. 그는 굿(good)’이 그동안 잘했다, 좋았다는 의미이며 앞으로도 좋을 거라는 셀프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리즈 시절이 언제냐는 질문에 지금이라고 답했다. 그간 성장하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을 지나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이라고. 그 새로운 시작에서 향후 더 멋진 비디오로 남을 도전과 성취들이 있기를.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의 코너 ‘헐크토크’에서 정덕현 평론가가 박세리가 맹활약하는 ‘노는 언니’를 진단하고 헐크지수를 매겨봤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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