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선문답에 떡밥만 잔뜩, 그래도 보게 되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나는 궁금해져.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마치 주문 같은 아이의 내레이션이 이 드라마가 서 있는 애매모호함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tvN 월화드라마 <낮과 밤>은 뭐 하나 쉽게 단서들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대사도 평이하지 않고 이야기는 더더욱 모호하며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꼭꼭 숨겨져 떡밥들만 던져 놓고 있다.

연쇄 자살 사건. 그것도 사전 예고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으로 벌써 다섯 명이 죽었다. 심지어 죽은 이들은 기묘하게도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즐거운 일에 빠져있는 듯 웃고 있다. 죽은 사체에서 보이는 삶의 표정들은 시청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저들은 왜 저렇게 죽은 걸까. 그건 자살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 타살일까.

이들을 수사하는 특수팀 도정우(남궁민) 팀장이나 FBI 출신으로 파견된 범죄심리전문가 제이미 레이튼(이청아)은 남다른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이 사건 앞에서 혼돈에 빠진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자살 예고 사건들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오리무중이지만, 유일한 단서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모두 과거 집단사망사건이 벌어졌던 하얀밤마을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도정우와 제이미 역시 하얀밤마을 출신이고, 그 때의 비극적인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지만, 그 후유증을 갖고 있다. 이 점은 이들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알 듯 모를 듯한 낮과 밤에 대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제이미는 쇼크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도정우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그는 어딘가 그걸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도 미스터리한데, 그걸 좇는 특수팀 역시 숨겨진 과거의 비밀이 있어 어떤 인물인지(형사지만 사건과 연루되어 있는 듯한) 확신할 수가 없다. 스릴러 장르에서 시청자들이 복잡한 사건들 속에서도 그나마 길을 잃지 않는 건 신뢰할 수 있는 주인공을 횃불처럼 들고 따라가기 때문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 전제 자체를 뒤틀어 놓았다. 그러니 볼수록 궁금증이 커지고 미궁 속에 빠져든다.

보통 어느 정도의 떡밥과 궁금증은 스릴러 장르에 힘을 부여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면 시청자들에게는 피로감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포기하는 것이다. <낮과 밤>4회까지 지나오면서도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고 있고 심지어 대사도 선문답처럼 던지는 경우가 많아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흥미로운 건 이런 정도의 미궁이라면 시청자 이탈이 당연해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청률이 4%대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흔히들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라고 표현하는 배우 남궁민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본이나 연출이 가진 단점들을 이 배우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채워주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남궁민인데 무언가 있겠지 하며 보는 기대감이 이 미궁 속에서도 시청자들을 붙들어 매는 힘이다.

보통의 스릴러가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공감에 의해 그 복잡한 사건 속에서도 시청자들을 따라가게 만든다면, <낮과 밤>은 특이하게도 캐릭터가 아닌 배우에 대한 믿음 때문에 시청자들이 계속 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힘이 어디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제아무리 남궁민이라고 해도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있기 마련이니까. 실로 궁금하다. <낮과 밤>은 답답함을 버티게 할 만큼 괜찮은 작품일까 아니면 떡밥만 가득한 그저 그런 작품일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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