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은 과연 이 많은 밑밥들 다 회수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tvN 월화드라마 ‘낮과 밤’은 예고 살인을 소재로 한 수사물로, 특이한 음모론을 품는다.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에 남궁민, 이청아, 김설현 등 배우들의 호연이 흥미를 자아낸다. 드라마는 예고 살인을 쫓는 특수팀의 활약을 따라가다가, 28년 전 ‘하얀밤 마을 사건’과 마주한다.

◆ 수사팀장이 살인자?

드라마가 풀어놓는 사건이 꽤 흥미롭다. 사법으로 응징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죽음이 예고되고, 그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도저히 살인이라고 보기 힘들다. 죽은 이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기꺼이 죽음에 뛰어든다. 최면상태에서 자살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수사팀의 의견이 분분한 와중에, 다음 예고 살인의 대상자가 지목된다. 28년 전 하얀 밤 마을의 지도자였던 손민호(최진호). 거대한 복지재단에 의해 운영되던 하얀밤 마을은 의문의 집단적인 죽음으로 폐쇄되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되었다. 손민호는 지금도 베일에 싸인 채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드라마 <낮과 밤>은 손민호의 배후를 파헤치는 특수팀의 수사를 보여주다가 돌연 특수팀의 내부가 의심스럽다는 사인을 증폭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6회에서 그간의 살인을 저질렀던 범인이 특수팀장 도정우(남궁민)으로 밝혀진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드라마는 6회를 변곡점으로 급하게 회전한다. 그때까지 시청자가 믿으며 따라가던 주인공이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바뀐다. 이런 반전이 극 후반이 아니라, 16부작 중 6회에 놓이다니 익숙한 서사 문법이 아니다. 수사 주체인 도정우가 지금까지의 연쇄 살인의 범인으로 자백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가 굉장한 능력과 시한부의 뇌질환을 가진 존재임이 한꺼번에 밝혀지다니 더욱 당황스럽다. 당연히 6회 만에 내놓은 반전은 밑밥일 것이며, 앞으로 드러날 진실이 더 많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 생체실험 음모론과 미디어 상징조작

<낮과 밤>이 풀어놓는 음모론은 꽤 심각하다. 28년 전 섬으로 고립된 복지시설인 하얀밤 마을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다. 세포 노화를 막는 물질을 연구하던 중 실험체인 아이들이 죽거나 뇌질환을 일으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보였다. 개중에는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느 날 의문의 사건으로 떼죽음이 벌어지고 몇 명만 살아남았다. 공식 생존자 7명을 추적해보니, 사건 이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았고, 한 명만 남아있다. 도정우는 하얀밤 마을의 비공식 생존자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비공식 생존자가 2명 더 있음을 알아낸다. 그리고 백야재단을 통해 실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재단은 거대한 권력과 유착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여기에는 경찰청장, 청와대 비서실장, 포털업체 사장 등이 연루되어 있다. ‘각하라 불리는 106세의 존재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드라마는 몇몇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비밀 생체실험과 그로 인한 돌연변이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마녀><경성학교>가 떠오른다. 고립된 섬에서 벌어진 생체실험으로 인한 집단죽음이라는 점은 <극락도 살인사건>이 연상된다. 복지시설을 위장해 조직적인 생명침탈이 이루어진다는 점은 <탐정2>을 떠올리게 한다. 생체실험이라니 꽤 굵직하고 활용할만한 소재이다. 그것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권력 및 자본과 유착된 채 진행되고 있다니 흥미로운 음모론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드라마는 미디어에 의한 상징조작을 잘 보여준다. 포털은 검색어 기능으로 대중의 관심을 원하는 곳으로 몰고 간다. 이지욱 기자(윤경호)로 대표되는 선정적인 보도 행태나 미담을 만들어 사건을 물타기 해버리는 경찰의 행태는 미디어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 다층적 추리

드라마가 품은 진실도 놀랍지만,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롭다. 대개의 수사물들은 수사팀 내부는 단일한 입장으로 뭉쳐서 보이다가 반전을 통해 내부에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낮과 밤>은 처음부터 수사팀 내부를 의문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애초부터 경찰 수뇌부에 재단과 내통하는 세력이 있음을 버젓이 밝힌다. 또한 도정우의 추리를 따라가며 제이미(이청아)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가 하면, 도정우를 의심하는 제이미의 입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이미 역시 하얀밤 마을의 비공식 생존자이다. 그는 기억을 잃고 미국에 입양되어 범죄심리학 박사가 된다. 수사팀원 공혜원(김설현)도 하얀밤 마을과 관련이 있다. 생체실험을 하는 공일도 박사(김창완)의 딸로, 도정우가 일부러 접근해 팀원이 되었지만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면서 변수가 생긴다.

이지욱 기자의 역할도 갈수록 중요해진다. 처음엔 관심종자로 치부되며 범죄자가 활용하는 스피커에 불과해 보였지만, 나름의 조사와 추리를 진행한다. 가장 먼저 도정우에게 의문을 품은 것도 이지욱이다. 그는 수사팀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신념을 교란하며, 뒤로 갈수록 사건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담당한다.

요컨대 드라마는 도정우, 제이미 박사, 공혜원, 이지욱 등의 시선과 추리를 교차하는 다층적인 관점을 취한다. 여기에 포털회사 사장에게 학대를 당하던 해커가 의문의 존재로 부상한다.

◆ 캐릭터 열전

특이한 전개에 낯선 음모론을 깔고 있음에도 몰입감이 강하다. 가장 큰 힘은 역시 캐릭터에서 나온다. 도정우는 엘리트 형사로 출발해서 괴물 같은 존재로 밝혀지는 인물이지만, 남궁민의 호연에 의해 설득력을 얻는다. 심드렁한 말투에 허무를 품은 눈빛은 <닥터 프리즈너><스토브리그>에서도 보았던 바이나, <낮과 밤>에서는 그보다 훨씬 거칠고 어둡게 표현되어 있다. 도정우가 품은 극단적인 내면이 남궁민의 헛헛한 표정으로 드러날 때, 짐작하기 힘든 인물임에도 그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제이미 박사는 냉철하고 이지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지만, 외로움과 비밀스러움이 서늘하게 감지된다. 극 전체의 추리를 이끄는 자이자, 비밀을 간직한 제이미 박사의 캐릭터가 이청아의 오롯한 연기로 살아난다. 그는 매우 주체적인 인물인데, 그의 캐릭터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혜원은 열혈형사이자, 도정우에 대한 사랑을 품은 캐릭터로 김설현의 연기력이 많이 신장했음을 보여준다. 전반부에 공혜원은 감정에 휘둘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시각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정우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사건의 진실을 보게 할 수도 있으며, 다정한 아버지가 거대 악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 후 어떤 도덕적 결단을 내리게 될지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드라마는 방송사 사장의 의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백야재단의 힘도 막강해 보이지만, 도정우의 능력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각하의 존재만큼이나 도정우의 천재성과 해커의 능력도 궁금하다. 지금까지 던진 밑밥들이 다 회수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작품이다.

황진미 칼럼니스트 chingmee@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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