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경계에 선 남궁민에게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박사님을 구한 건 괴물이라고 했죠? 그 괴물이 바로 나야. 그리고 이번에도 그 괴물이 당신이 구했으니 그걸로 됐어요.” tvN 월화드라마 <낮과 밤>에서 도정우(남궁민)는 자신을 면회 온 제이미(이청아)에게 그렇게 말했다. 도정우는 연쇄 예고 살인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수감됐다. 예고 살인은 세상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 과거 하얀밤 마을의 지도자였던 손민호(최진호)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철저한 사전포석이었다. 경찰청 특수팀 팀장으로 연쇄 예고 살인의 범인을 뒤쫓는 듯싶었지만, 그것이 그의 계획 하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은 도정우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만든다. 그는 이런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연쇄 살인을 벌인 괴물인가.

하지만 그와 제이미(이청아)가 함께 어린 시절 하얀밤 마을에서 겪은 끔찍한 인체실험의 피해자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의심에 안개를 드리운다. 하얀밤 마을은 마치 새로운 공동체처럼 포장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하는 곳이었다. 무언가 초인간적인 남다른 능력을 가진 존재를 키워내려 하는 인체실험에서 많은 아이들이 부작용으로 쓰러져 죽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밤 마을은 참사의 밤을 겪었다. 서로가 죽고 죽이는 대살육이 벌어졌던 것. 그 때 생존해 남은 한 아이는 그 일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도정우일까 아니면 제이미일까.

<낮과 밤>은 초반부 한없이 애매모호한 사건들의 연속을 보여줬다. 그런데 어째서 그 사건들이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었는가가 도정우의 실체와 함께 드러났다. 끔찍한 인체실험의 피해자이면서 그 실험을 통해 뇌질환을 앓는 후유증과 더불어 남다른 능력을 가진 도정우는 범인이면서 형사였고,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으며,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존재이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 사건들이 애매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낮과 밤>은 도정우라는 주인공이 맞서는 적들의 실체를 통해 그 사건의 정황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도정우는 당시의 하얀밤 마을을 이끈 인물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백야재단 그리고 현재도 그 지원으로 계속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연구소와 맞서는 중이었다. 그 세력들 속에서 하얀밤 마을의 지도자였던 손민호는 꼬리에 불과했다. 오정환(김태우) 같은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공혜원(김설현)의 평범한 아버지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이 실험을 앞장서 하고 있는 연구소의 공일도(김창완) 소장, 포털을 통해 여론을 호도하는 MODU의 장용식(장혁진) 대표 같은 인물들이 그 진짜 몸통들이었다.

그 몸통들은 겉으로 보면 대통령 비서실장, 연구원, 기업 대표처럼 사회의 명망 높은 인물들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들이야말로 끔찍한 괴물인 셈이다. 반면 연쇄 예고 살인의 범인으로 지목된 도정우나, 그 예고 살인을 독점적으로 방송에 내보낸 이지욱(윤경호) 기자처럼 스스로를 괴물이라 얘기하거나 기레기를 자처하는 인물은 어딘지 저들 진짜 괴물들과 맞설 수 있는 대안처럼 보인다.

과거 하얀밤 마을에서 살아남았던 제이미는 자신을 납치해 뇌수술을 받게 한 자가 도정우라는 걸 알게 되고는 혼돈에 빠진다. 당시의 생존자들 대부분이 뇌질환을 앓다 사망했다는 걸 알게 된 제이미는 자신이 납치된 것이 뇌병변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걸 주도한 인물이 도정우라는 걸 알게 된 것. 뇌수술 이후 제이미는 점점 과거 그 하얀밤 마을 사건 이후 잃었던 기억이 선명해진다. 자신도 도정우처럼 남다른 능력(달려오는 차를 세우는 것 같은)을 가졌다는 사실 또한. 도정우는 자신이 꾸미고 있는 일에 제이미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미국으로 돌아가 말하지만 제이미 역시 그 때의 피해자로서 도정우 편에서 저들과 대적하게 되지 않을까.

<낮과 밤>은 그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선과 악, 괴물과 천재, 피해자와 가해자 같은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경계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내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희미한 경계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도정우다. 그는 과거 인체실험의 피해자였지만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그 실험을 막기 위해 저 스스로 가해자가 되었고, 그 후유증과 더불어 남다른 능력을 가진 괴물이 되었지만 그 힘으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과 싸워나간다.

<낮과 밤>이 이런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심지어 그 대상이 뒤바뀐 상황을 굳이 보여주는 건, 우리네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여겨진다. 법과 언론, 정치, 경제 등등의 분야에서 저마다 자신들이 옳다 말하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같은 인물에게도 낮과 밤 같은 애매한 경계가 느껴지는 현실이 그렇다. 그 희미한 경계 속에서 우리는 진짜 진실이 무엇인가를 애써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마 <낮과 밤>이 하려는 이야기일 게다.

실로 이 경계에 서 있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혹은 괴물인지 천재인지, 범법자인지 진짜 정의를 구현하려는 인물이지가 애매모호한 도정우라는 캐릭터의 탄생은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어딘지 세상일에 비아냥대는 냉소적인 모습과 더불어 쓸쓸함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의 창조. 그저 달달한 사탕이 아니라 마치 살기 위한 약처럼 느껴지는 막대사탕 같은 이중적 의미를 그 습관적 행위만으로도 구현해내는 캐릭터를 남궁민은 생생하게 살려낸다. 그의 애매모호함이 궁금증이 되어 시청자들을 계속 끌고 가는 이유다.

‘내마음이들리니?’로 주목받기 시작해 지난해 ‘닥터프리즈너’와 ‘스토브리그’로 완벽한 원톱 대세배우로 떠오른 남궁민에 대해 엔터미디어 ‘싸우나피플’에서 알아봅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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