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19금 전성시대,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는 없나
‘나빌레라’·‘오! 주인님’... 갈수록 힘들어지는 멜로·휴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지금은 19금 드라마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처럼 사이코패스 잡는 사이코패스라는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 앞에서 MBC ‘오! 주인님’ 같은 다소 전형적이지만 따뜻한 멜로 휴먼드라마는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펜트하우스’로 19금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SBS는 또 다른 19금 설정의 ‘모범택시’로 시청률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과거 우리네 드라마의 주력 장르이기도 했던 멜로나 휴먼드라마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에 쏟아지는 호평과 상반되는 낮은 시청률에는 시청자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이어진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칠순의 덕출(박인환)이 보여주는 발레 도전에 담긴 감동적인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할비레라’라는 표현까지 나오게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 JTBC ‘눈이 부시게’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휴먼드라마지만, 19금 드라마 전성시대의 자극 앞에 2%대 시청률에 머물며 훨훨 날지는 못하고 있다.

‘오! 주인님’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을 가져왔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들여다보는 삶과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휴먼드라마다. 한비수(이민기) 작가와 톱배우 오주인(나나)이 함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물론 둘 사이의 멜로를 그려내지만,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가 치매를 앓는 오주인의 엄마와 그의 절친으로 역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한비수의 엄마를 위한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은 휴먼드라마의 따뜻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등장하고 있는 19금 드라마들이 그저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만 치닫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우스’는 다소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장면과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은 진중하다. 가해자들이 별 죄책감도 없이 지내는 것과 상반되게 평생 상처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이 질문이 새삼 들여다보게 해줘서다.

‘모범택시’도 마찬가지다.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사적 복수’라는 자극적인 설정을 담은 드라마지만,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법 현실을 폭로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모범’이라 타이틀을 걸었지만 실체는 범법 행위를 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법을 세우고 있는 현실이 과연 ‘모범적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를 되묻는 이야기. 즉 최근의 19금 드라마들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나름의 완성도와 주제의식도 갖춰가고 있어 향후에도 이 전성시대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멜로나 휴먼드라마 같은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을 들어 19금 드라마들을 비판하긴 어렵다. 그건 다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지향점이 다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19금 드라마들의 자극과 수위가 따뜻한 드라마들에 대한 시선과 관심을 빼앗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때는 우리네 드라마의 주력 장르이기도 했던 멜로와 휴먼드라마는 과연 이 강력한 19금의 자극 속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19금과 더불어 이들 따뜻한 드라마들이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이 낮은 시청률로 재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극의 피로감 속에서 어떤 편안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는 또 분명히 필요한 법이니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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