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시원하지만 매끄럽지는 않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 <드라이브>를 레퍼런스로 삼은 흔적이 보인다. 물론 <드라이브>의 드라이버는 스턴트맨이고 <모범택시>의 김도기(이제훈)는 수상한 택시운전기사로 등장한다. 하지만 <모범택시> 김도기의 스타일이나 분위기, 혹은 배경으로 깔리는 1980년대 전자음악에서 그 미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드라이브>와 <모범택시>의 교차점은 여기까지다. 사랑하는 한 여자를 위한 복수극 액션을 세련된 영상으로 담은 미국 영화 <드라이브>와 한국 사회의 악랄한 것들을 응징하는 <모범택시>는 각기 다른 길로 달려간다.
<모범택시>는 최근 장르물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악을 응징하는 작품이다. OCN <경이로운 소문>에서 tvN <빈센조>에 이어 <모범택시> 역시 마찬가지로 악은 악이지, 변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히트작과 다른 지점은 바로 현실에서 악의 대상들을 빌려왔다는 점이다. 일단 첫 회에 조두순을 모델로 삼은 악역을 비롯해 이후 젓갈공장 사건이나 회사 갑질, 학폭 사건들까지 실제 이슈화된 사건들을 드라마적으로 엮어낸 구성을 보여준다.

<모범택시>는 실제 악인들의 서사에 드라마의 판타지를 섞어 그들을 응징한다. 장성철(김의성)의 ‘무지개운수’라는 가상의 범죄해결사들이 법이 미처 하지 못한 응징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최전방에 살인범에게 가족을 잃은 김도기가 있다. 천하무적 김도기가 잠입 캐릭터로 분하며 악의 세력을 처리하는 과정은 나름 흥미롭다. 김도기를 연기하는 배우 이제훈의 개그와 진지함을 넘나드는 호연도 흥미롭다.
다만 그럼에도 드라마가 평이하게 흘러간다는 인상을 주는 건 피할 수 없다. 실제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잔뜩 들어간 후, 단순하게 직진하는 해결과정이 시원한 동시에 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에 깔고 시작했던 SBS 금토드라마 방영작인 <날아라 개천용>도 이와 비슷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배경 범죄 사건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모범택시>나 <개천용>은 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큰 공을 들인다. 당연히 드라마 전개에 그 사건 설명의 비중이 크다보니,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실제 사건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다른 이야기들은 묻혀 버리는 것이다. 특히 <모범택시>에서 주요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는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마다 확확 달라지는 실제 사건에 압도되어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또 제시되는 사건은 거대한데, 사건 해결의 과정들은 굉장히 단순하고 평이하게 흘러가는 것도 이런 불균형에 한 몫 한다.
물론 가상의 악역이 벌이는 사건을 이래저래 코믹하게 변형할 수 있는 <열혈사제>나 <빈센조>와 달리 <모범택시>의 경우 실제 사건들을 가볍게 변주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사건 자체의 악역이 워낙 소시오패스 같은 인물들이다. 반면 주인공 주변의 캐릭터는 굉장히 가볍게 그리기 때문에 당연히 드라마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모범택시>를 보는 일은 쾌적하지만은 않다. 실제 사건들은 강렬하고 악당을 응징하는 장면들은 시원하지만 모든 것이 함께 굴러가는 이야기의 전개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세련된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감각적인 몇몇 장면들은 이야기 위에서 그저 겉돌 따름이다. 폼 잡기에는 영 폼이 안 사는 드라마인 것이다.
결국 모두 따로 노는 조합 속에 남는 것은 하나의 탄탄한 드라마가 아닌 불쾌하고 악랄한 사건들의 잔상이다. 물론 <모범택시>가 웰메이드 드라마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하고 미개하고 부조리한 자본주의 밑바닥의 갑질사회 코리아에 대한 사회고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야, 그 점에 있어서는 일면 성공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