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사적 복수의 사이다 위해 소비되는 피해자에 대한 가학성

[엔터미디어=정덕현] 법이 있기는 있는 걸까. SBS 새 금토드라마 <모범택시>가 그리는 사회의 풍경은 법이 없는 세계처럼 살풍경하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고 출소한 조도철(조현우) 앞에 시민들이 몰려나와 이를 반대하고 공분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가 다시 사회로 되돌려진다면, 그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그와 인근 거리에 사는 주민들의 불안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런데 <모범택시>가 의도적으로 가져온 이 조도철이라는 인물은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이름에서부터 현실의 한 아동 성 범죄자를 떠올린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간간히 마트에서 봤다는 식의 뉴스들이 지금도 올라오는 그 인물. 그만큼 이런 인물이 사회에 복귀한다는 사실이 주는 시민들의 불안감과 분노가 여전하다는 걸 그런 뉴스들은 에둘러 보여준다.

<모범택시>가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가져온 건 사적 복수.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혹은 처단하지 않는 이들을 무지개운수 팀이 대신 처단하는 것. 이른바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한 사적 복수 대행 서비스. 모범택시에 조도철을 태운 김도기(이제훈)는 차 안에서 그를 제압해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지하세계의 대모 백성미(차지연)에게 넘겨준다. 법이 풀어준 조도철은 그렇게 사설 감옥에 다시 갇혀 격리된다.

사적 복수 대행 서비스를 하는 무지개운수의 지하기지(?)’는 마치 배트맨의 기지를 패러디한 듯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배트카 대신 개조되어 여러 기능을 가진 모범택시가 있고, 배트맨 대신 사적 복수를 대신 해주는 김도기가 있다. 물론 택시에 그런 기능들을 장착하는 기술자들 최주임(장혁진)과 박주임(배유람)이 있고,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무지개운수의 대표 장성철(김의성)이 있다. 또 자칭 IT 전문가인 무지개운수 경리과 직원인 안고은(표예진)도 중요한 팀원이다. 사적 복수를 위해 모여 있는 이들이 계획을 짜고 복수를 해나가는 과정은 그래서 케이퍼 무비 같은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사적 복수의 사이다 쾌감은 이를 전제하는 다소 불편하고 불쾌할 수밖에 없는 고구마 범죄자들의 장면과 이야기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보육원을 나와 젓갈 공장에 들어간 지적장애 여성이 그 곳에서 당하는 갖가지 폭력들이 그것이다. 다짜고짜 생선이 담긴 대야에 머리를 집어넣고, 냉동창고 통 속에 가두고 소금과 물을 뿌리는 장면이나, 통 속에 가둔 채 물을 채워 넣는 장면이 등장한다. 성폭행 역시 빠지지 않는다. 도망치다 만나게 된 경찰이 오히려 그를 잡아 공장에 데려오는 장면은 무법 지대의 고구마 상황들을 더해준다.

이런 보기 불편한 장면들을 꽤 자세히 반복적으로 담아내는 이유는, ‘사적 복수의 사이다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물론 공적인 사법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사적 복수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제시되는 이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오히려 이런 일들이 실제로도 발생하는 부조리한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적 복수의 사이다를 위해 피해자가 전시되고 활용되는 이 극의 장면들은 또 다른 폭력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모범택시>는 첫 회에 10.7%(닐슨 코리아)로 가뿐히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거두절미하고 사적 복수를 행하는 무지개운수의 이야기가 특별한 전후 사정 설명 없이도 가능했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현실의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공감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참교육이라고 표현되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그 현실을 <모범택시>는 가져오는 것만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사적 복수의 사이다를 만들어내기 위해, 끌어오고 전시되기도 하는 피해자들의 가혹한 피해 장면들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모범택시>는 보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가릴 수 있다. 한편에서는 속이 시원하다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다소 가학적으로 전시되는 장면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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