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웹하드 불법 유출 동영상 사안 다루며 ‘음란물’이라니
[엔터미디어=정덕현] ‘음란물 영상 유출 투신 자살 사건.’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에서 김도기(이제훈)는 무지개운수 대표이자 파랑새재단 대표인 장성철(김의성)로부터 사건 파일 하나를 건네받는다. 그건 바로 안고은(표예진)의 언니가 불법 유출 동영상으로 인해 자살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 파일에 적힌 사건명을 보면 ‘음란물 영상 유출’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과연 이 불법 유출된 동영상을 ‘음란물’이라 지칭해도 되는 걸까.
<모범택시>가 이 사건을 소재로 가져온 건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룬 바 있었던 웹하드 불법 유출 동영상의 심각한 실태를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웹하드 불법 동영상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던 그 사건이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이렇게 유출된 불법 동영상 때문에 성형 시술까지 고민하던 한 피해자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모범택시> 속 유데이터라는 회사가 자행하고 있는 불법 동영상 촬영부터 불법 유출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그 일련의 내용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뤘던 그 사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점은 김도기와 무지개운수 팀원들이 이들에 대한 처절한 ‘사적 복수’를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 사건을 굳이 <모범택시>가 가져온 건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이를 대리해 잠시 간의 카타르시스를 주려 하는 것. 하지만 ‘불법 유출 동영상’을 ‘음란물’로 지칭하는 건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일이다.
피해자들은 ‘음란물’을 찍은 적이 없다. 다만 그들의 사적인 영상이 불법적으로 유출됐거나, 혹은 강제적으로 폭력에 의해 찍혔을 뿐이다. 그걸 음란물로 지칭하는 건 그래서 피해자들에게 또 다시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범택시>는 이 사안을 다루면서 어째서 이런 디테일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걸까.
<모범택시>는 실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와 ‘사적 복수’라는 판타지를 더하는 이야기로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등급 자체도 19금을 선택해 보다 적나라하게 사건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 묘사에 있어서 과연 이 드라마가 제대로 된 배려를 하고 있는가는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다.
물론 드라마 시작 전에 사전 고지로 ‘피해사건이 묘사될 때 불편한 장면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피해자가 당하는 장면들을 굳이 직접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첫 사례로 나왔던 젓갈공장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당하는 장면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 보기 불편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 바 있었다.
그런 장면이 결국은 ‘사적 복수’라는 카타르시스를 위한 사전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의 자극을 위해 피해자를 전시하거나 활용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번 불법 유출 동영상을 ‘음란물’이라고 지칭하는 장면은, 똑같은 취지를 갖고 사안을 다뤄도 그 디테일한 접근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도치 않게 또 다른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어떤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를 예민하게 들여다보려는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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