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사랑과 멸망의 대결을 연기하는 서인국과 박보영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들의 주고받는 밀당은 멜로일까 아니면 대결일까.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그 장르가 판타지 멜로다. 멸망(서인국)이라는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와 탁동경(박보영)이 서로 밀고 당기는 멜로의 과정을 외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멸망이라는 인물이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상화된 존재라는 점은 이 멜로를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추상적 개념으로 해석해보면 탁동경은 ‘사랑’을 구상화한 존재다. 멸망과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대결은 그래서 멸망이 지나는 자리마다 폐허가 되어버리는 생명들을 탁동경이 다가가자 다시 살려내는 판타지적 풍경으로 그려진다.

탁동경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건 어려서 부모님이 사고로 동시에 돌아가시면서 생겨난 트라우마다. 그는 그래서 동생 탁선경(다원)이 자그마한 사고를 당해도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래서 멸망이 자신에게 내민 계약에서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는 선택으로 그는 멸망을 사랑해보려 한다. 사랑으로서 사라지는 것들을 막을 수 있다 그는 생각한다.

반면 멸망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라는 자신의 존재 때문에 그 무엇에도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한다. 마음을 줘봐야 결국 사라질 것이고 그것이 그에게 상처로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폐허로 변하는 걸 경험하는 그는 그래서 차라리 인간들을 그래도 괜찮은 존재들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랑은 ‘연민’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소녀신(정지소)의 이야기를 그는 애써 부정한다.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욕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속 얘기를 들으며 인간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탁동경은 멸망이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됐는가를 그의 무의식 속에서 그가 지난 자리마다 폐허가 되는 광경을 보며 이해하게 된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신. 닿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쓸쓸하겠지. 절대 사랑하고 싶어지지 않을 만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네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은 사랑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탁동경이 멸망에게 다가갈 때 그의 무의식 속 폐허가 되어버린 풍경들을 되살려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탁동경이 멸망의 손을 잡을 때, 화면은 반으로 컬러와 무채색을 나눠 놓는다. 탁동경의 사랑은 멸망에게는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멸망은 놀라며 탁동경의 손을 뿌리친다.

멜로의 과정으로 그리고 있지만, 탁동경과 멸망은 그래서 팽팽한 대결구도로 읽혀지기도 한다. 모든 걸 사라지게 하는 멸망 앞에서 탁동경은 사랑으로 맞선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보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랑이나 멸망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캐릭터로 구상화해 그 멜로 과정을 통해 팽팽한 대결을 그리는 작품으로 보는 시청자들은 독특한 드라마로 흥미로울 수 있지만, 너무 추상적 개념들을 인물화한 것이라 이것이 낯선 시청자들은 다소 선문답 같은 대사들이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어쨌든 독특한 판타지 멜로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온 로맨틱 코미디들 속에서 색다른 경험들을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스러운 건 이 추상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바꿔주는 서인국과 박보영 같은 연기자들의 매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그들의 매력적인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추상적인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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