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소년단’, 아이들이 스승인 근사한 성장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상파에 더해 케이블, 케이블에 더해 종편, 종편에 더해 유튜브, 유튜브에 더해 스트리밍 서비스. 미디어 플랫폼의 수는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로 증가하지만, 그 플랫폼에서 선보이는 서사의 다양성도 같은 속도로 보완됐을까? 여전히 절대다수의 드라마는 서울과 그 인근 수도권을 배경으로 삼고 있고, 10대 시청자들을 공략하는 일부 웹드라마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서사의 주인공은 사회생활을 하는 2049 연령대에 머물러 있다. 조금은 다른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갈증이 들 때쯤, 반도의 땅끝 해남을 배경으로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는 10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SBS <라켓소년단>이 도착했다. KBS <땐뽀걸즈>(2018)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비수도권을 배경으로 한 스포츠 성장 드라마다.

이승한 평론가는 <라켓소년단>이 등장인물 모두에게 자력으로 성장할 공간을 너그럽게 열어두고 그 가능성을 믿는 낙관의 성장드라마라는 점을 높게 샀다. “단순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길을 따라가거나 그 반동으로 정반대의 길을 걷는 대신, 다소 헤매더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해 결정을” 내리는 등장인물들의 건강함이 반갑다는 평이다. 정석희 평론가 또한 같은 지점을 흐뭇하게 보았지만, 연기력이 탄탄한 성인 배우들이 연기하는 어른의 서사가 중심으로 치고 들어오지 않고, 아이들의 성장담을 옆에서 보조하는 정도를 넘지 않는다는 점을 높게 샀다. <라켓소년단>의 주인공은 아이들이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이들의 성장담이라는 본질을 해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남지우 평론가는 전작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에서부터 이어지는 정보훈 작가의 선량한 세계관에 주목했다. “실수하는 사람”과 “인간은 선하며 세상은 선의로 가득 차 있음을 믿는 사람”에 대한 정보훈 작가의 애정과 믿음이 <라켓소년단>의 동력이라는 평이다.

◆ 누구도 완벽하지 않아서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세계

“그건 다 너를 위해서야. 지금은 이해 못하겠지만, 부모의 능력도 다 네 재산인 거야.” 아들이 배드민턴부에 들어가는 걸 말리고 싶은 군 의장(홍서준)의 만류에, 아들 인솔(김민기)은 답한다. “그것도 다 알아. 그런데 나 말이야. 이번엔 내 의지로, 내 실력으로 배드민턴부에 들어가고 싶어. 아빠찬스 썼다는 말 듣는 거, 이젠 못 참을 거 같아. 아빠, 어른들 방식 말고 우리들 방식대로 한번 해볼게. 나 잘 할 수 있어.”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이 그리는 세계는 건강하다. 라켓을 손에 쥔 해남의 아이들은 저마다 넘어야 할 고민이 많지만, 단순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길을 따라가거나 그 반동으로 정반대의 길을 걷는 대신, 다소 헤매더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해 결정을 내린다. 모든 순간 올바른 선택을 내리지는 못해도, 제 힘으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과정은 더없이 단단하다.

이 세계에서는 아이들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 실수투성이 어른들도 함께 자란다. 도시에서 내려온 젊은이들의 실수에 크게 화를 내던 오매할머니(차미경)는, 광주 한복판에서 시간을 쪼개 자신을 도와준 취준생 청년(김민석)을 보며 누구나 처음은 다 서툴고 어려운 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사과한다. 같이 사는 아들 해강(탕준상)이 왜 배드민턴을 그만 두고 야구로 전향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하고 철없는 아버지인 윤현종(김상경) 코치는 이제 해남서중 배드민턴부 학생들의 꿈을 위해 진짜 코치다운 코치로 거듭나야 할 필요를 느끼고, 삶을 포기할 생각으로 해남에 내려온 도시부부(정민성, 박효주) 또한 다시 좌절을 딛고 일어나 살아낼 힘을 기른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교도소를 배경으로도 근사한 성장 드라마를 써 보인 필력을 지닌 정보훈 작가의 차기작답게, <라켓소년단>은 화면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이들에게 성장할 공간을 열어 보인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누구든 더 성장하고 나아질 공간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 비관과 냉소가 지배적인 시대라 더 반가운 낙관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아이들이 어른의 스승이다

<라켓소년단>이 4회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하시라도 배드민턴에서 발을 뺄 심산이던 윤해강(탕준상)이 팀원들을 친구로 받아들였는가 하면 전교 1등 모범생 정인솔(김민기)이 새로이 팀에 합류할 모양이다. 민폐 코치 윤현종(김상경)은 ‘하얀 늑대’ 배 감독(신정근)의 바람대로 아이들의 진짜 코치가 될 수 있을까? 본인의 과오로 아이들이 출전을 포기해야 했건만 각성의 의지조차 엿보이지 않던데? 15~16세 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모두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릴 적 유망주였던 해강이가 배드민턴을 그만두고 야구로 전향한 이유가 밝혀졌는데 예상대로 아버지 윤 코치의 무능이 원인이었다. 서슬 시퍼런 카리스마 덕에 사람들이 ‘라노스‘라고 부르는 해강의 어머니 라영자(오나라) 코치는 왜 아들 해강이의 마음은 살피지 않는 걸까? 해강이가 동생 해인(안세빈)을 살뜰히 챙길 때마다 어찌나 마음이 짠한지.

 

김상중, 오나라, 신정근, 우현 등 내로라할 연기력의 배우들이 포진해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중심이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아이들 어깨를 토닥여 격려하는 정도에 머문다. 이 드라마는 아이들이 운동하는 얘기니까. 승자독식, 1등만 인정받는 스포츠 세계에서 “져도 돼. 한세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그 동안 고생했다.” 라고 말해준 해강. 세윤(이재인)은 해강의 말에 안정을 찾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순간 tvN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덕선(혜리)의 배려로 대국 전날 잠을 잘 이룰 수 있었던 택(박보검)이. 해강이에게 한 수 배웠다. 이 드라마는 아이들이 어른의 스승이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슬기로운 라켓생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는 아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종장을 만들어낸 드라마라는 것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보훈 작가는 <슬감빵>의 마지막 화(16화)에서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있는 힘껏 드러낸다. 그의 세상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규칙을 지키며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보통 사람도 있고, 자기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징벌을 받는 악인도 있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가 진정으로 믿는, 심지어는 자신을 투영하기까지 하는 인물 유형은 단 둘뿐인 것 같다. 첫째, 실수하는 사람. 그리고 둘째, 인간은 선하며 세상은 선의로 가득 차 있음을 믿는 사람.

감방을 벗어난 정보훈 작가. 그는 자신의 믿음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최적의 방식으로 드라마를 세팅했고, 그 결과로 SBS <라켓소년단>을 내놓았다. ‘소년만화’라는 장르와 스포츠라는 소재는 성숙하지 못한 인물의 잘못과 그로 인한 소소한 실패를 밉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이다. 또한, 물질 만능과 현대화의 폐허에서 선의로 가득한 (거짓말 같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 배경은 분명 도시가 아닌 시골이어야 할 것이다. KBO 최고의 마무리 투수 김제혁(박해수)은 야구 선수 출신 배드민턴 천재 윤해강(탕준상)이 되었고, 재소자들이 몸을 부대끼며 먹고 자던 서부교도소 2상 6방은 땅끝마을 해남의 주황 지붕 하숙집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남자들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한 우정이 다시 한번 펼쳐진다.

‘16살 야구소년이 서울에서 해남으로 전학을 오며 배드민턴을 시작하는 이야기’라는 플롯에서 그 어떤 새로움이나 창의성을 느끼지 못할 시청자들이 많을 것 같다. 교도소에 비해 농촌이라는 배경은 대단히 새롭지 않고, 다양한 사연을 지닌 범죄자들에 비해 그저 짧은 인생을 살았을 뿐인 열여섯 살들의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훈 작가는 그의 영광스러운 데뷔작을 뒤로하고, <라켓소년단>이라는 차기작에 이르러 자신의 믿음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선하며, 세상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믿음 말이다. 4화까지 조금씩 드러난 체육계의 폭력이나 승부 조작 문제, 혹은 지방 소멸에 관한 비판 의식까지 계속 전개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정보훈의 성선설’을 얕잡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영상=SBS.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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