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서야’, 중년들의 오피스물이 담아낼 현실들

[엔터미디어=정덕현] 구조조정으로 희망퇴직원을 건네며 조건을 얘기해야 하는 당자영(문소리). 대상자들 앞에서는 기계처럼 냉정하게 조건들을 말하며,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얘기해준다. 이른바 ‘복직투쟁’을 선택하게 된다면 물론 노동자가 이길 수 있겠지만, 사측에서는 계속 법정싸움을 이어가 그 과정이 10년 가까이 이어질 거라는 것. 그건 설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협박이다. “선택은 자유”라고 말하는 당자영에게 대상자들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사인을 하게 된다.
MBC 수목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는 맨 앞에서 정리해고를 진두지휘하는 당자영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사측을 대표해 회사가 원하는 대로 직원들을 퇴사시키고 있지만, 그런 냉정함 이면에 감정이 없을 수 없다.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는 걸 알게 된 이들이 주저앉아 오열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 말이다. 당자영은 자신 또한 승진해 임원으로까지 가지 않으면 그 정리해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인물이다. 자신이 버텨내기 위해 타인을 잘라내는 역할을 하는 인물. 당자영 만큼 관리자 역할을 하는 중년 샐러리맨의 위치와 현실을 잘 보여주는 인물도 없다.

최반석(정재영)은 22년차 개발자로, 특이한 건 그 경력과 나이면 맡게 되는 게 당연한 관리자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인물이다. 개발자로서의 능력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창인사업부의 핵심개발부로 발령을 받았는데 나이 어린 한세권 팀장(이상엽)의 눈 밖에 나서 전혀 경험도 없는 인사팀 부장으로 밀려난다. 결국 그는 인사팀 팀장으로 오게 된 당자영 밑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최반석이 한세권 팀장의 미운 털이 박히게 된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그건 한세권 팀장이 개발 중인 로봇청소기의 오류를 소프트웨어가 아닌 부품 교체로 이틀 만에 최반석이 해결한 게 갈등의 원인이 됐다. 부당함을 호소하는 최반석에게 한세권은 이러한 인사조치를 ‘부품’에 비유해 이야기한다. 최반석이라는 부품이 자신의 팀에는 맞지 않아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

거대한 회사 조직에서 사원들은 ‘부품’처럼 활용된다. 새 부품이 나오면 교체되고, 다른 부품들과 잘 맞는다고 사측이 판단하면 어디로든 옮겨진다. 당연히 구 부품들은 소모품처럼 버려진다. 새 부품을 넣은 로봇청소기가 성능은 좋을지 몰라도 다른 부품들과 호환성이 좋지 않아 충돌을 일으키는 문제를, 최반석이 구 부품으로 교체해 문제를 해결하는 이 에피소드는 그래서 마치 최반석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최반석이라는 ‘구 부품’은 과연 회사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미치지 않고서야’는 물론 회사 내에서의 생존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극적인 이야기의 조미료를 치지는 않는다. 최반석과 당자영이라는 인물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아내면서 그들 앞에 놓이게 되는 갈등들을 천천히 그려나간다. 그 이야기 방식은 그래서 ‘미생’의 중년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초년생들이 겪는 성장통과 현실을 담았던 ‘미생’처럼, 이 드라마는 살아남아 임원이 되지 않으면 정리해고 될 처지에 놓은 중년 샐러리맨들의 ‘버텨내는 삶’을 담고 있다.

평생 개발자로 일해 왔던 최반석은 인사팀 부장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나갈까. 구 부품이라고 해서 쓸모가 없는 건 아니라는 걸 그는 인사라는 일 속에서도 보여줄까. 그런 그의 선택들은 오로지 임원을 목적으로 사측이 원하면 정리해고라는 칼을 휘둘러온 당자영과 어떤 갈등을 만들 것이고, 그 갈등은 두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중년판 ‘미생’처럼 다가오는 ‘미치지 않고서야’가 주는 기대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