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빌런은 ‘골목식당’을 구원해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너무나 살가운 모녀지간이었다. 마치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말을 건네는 딸.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새로 찾아간 하남 석바대 골목의 모녀분식집은 백종원이 첫 방문하기 전 확인한 영상만으로도 얼마나 화기애애한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밥 하나를 말아도 남다른 재료와 정성을 다하는 엄마. 하지만 요리를 배우는 딸에게는 엄하게 대하는 엄마. 그 광경에서 손님들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한 음식을 내놓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놀랍게도 이 집의 딸은 엄마의 친 딸이 아니었다. 재혼을 해서 가슴으로 갖게 된 딸이었던 것. 딸은 부모의 이혼으로 방황하다 새 엄마를 통해 안정감과 편안함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이 툭 튀어나와 딸도 엄마도 놀랐다고 했다.

더 놀라운 건 재혼한 남편과도 결국 이혼을 하게 됐을 때, 이 딸이 새 엄마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딸과 엄마는 빚을 내 모녀분식집을 열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는 거였다. 손님이 찾지 않는 가게지만 모녀가 그래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던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런 정성이 마음으로부터 담겨 있는 음식이 맛이 없을 리가 없다. 기본 김밥과 돈가스 김밥 그리고 제육볶음을 먹어본 백종원은 최고는 아니지만 저마다 맛이 있다고 평가했다. 거기 재료 하나하나에 담겨진 정성을 읽어낸 것이다. 음식과 모녀의 마음이 더해진 모녀분식집 이야기에서 더 감동적이었던 건, 주변의 왜곡된 시선들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해준 말이었다.

“그랬니? 진짜 엄마가 아니었구나? 아 진짜 딸이 아니었구나? 그런 거.. 가족이고 그냥 자식이에요. 그래서 함께 가야하고. 그 아이가 잘 됐으면 좋겠고. 그냥 그런 거예요. 그냥 내 자식이니까. 자식에 대한 의미가 뭐가 있어요. 제 아이가 되어줬잖아요. 그 이상의 저한테는 큰 선물이 없어요.”

하남 석바대 골목이 소개한 첫 번째 가게로 모녀분식집의 이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은 그러나 두 번째 소개된 춘천식 닭갈빗집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니 춘천식 닭갈빗집은 천사같은 모녀분식집과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줬다. 어찌 보면 과거 포방터 시장의 ‘탕자 사장님’이었던 홍탁집 아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무슨 갇혀 일하는 아주머니도 아니고, 엄마는 하루 종일 주방에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일을 하는데 사장인 아들은 어슬렁어슬렁 홀을 돌아다니다 가게 앞에서 괜스레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는 체를 할 정도로 여유를 부렸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사장님의 지인들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장사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도 찾아와 낮부터 술을 권하기도 하고, 다트에 빠져 있다는 사장님과 다트 게임을 하기도 했다.

웃으며 여유 있게 다니는 모습은 이 골목의 ‘핵인싸’처럼 보였지만, 그가 그럴 때 뒤에서 말없이 힘든 일을 도맡아하는 엄마와의 대비는 ‘무개념’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광경을 첫 방문 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 백종원은 가게마다 손님이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기운 같은 게 있는데 저 집은 그게 없다며, 지금도 가고 싶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 집의 문제는 아들인 사장님이 자신의 그런 무개념 행동들에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음식 맛은 차후였다. 결국 시식을 위한 닭갈비가 차려졌지만 백종원은 손도 대지 않고 주방부터 살폈다.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 심각한 위생상태들이 화면으로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손님이 앉는 식탁 아래 개집이 있고, 거기 개가 물어뜯다 놔둔 뼈다귀 같은 것들조차 방치해 놓은 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또 서비스로 마련된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냉장고는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가득 했다. 그런 아이스크림을 과연 손님이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음 주 예고는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바 그대로다. 백종원의 분노한 모습이 비춰졌고 이 아들에게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외국 같으면 소송 걸릴 일”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아들이 질타를 받는 광경을 목격한 엄마는 소리 내서 울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다소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시청자들이 공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시판에서는 벌써부터 ‘백종원의 인간 만들기 솔루션’에 대한 댓글이 붙었다. 모녀분식집에서 감동했다가 모자닭갈비집에서 역대급 울화가 터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악마의 편집’이라는 목소리들도 등장했다. 단골, 지인이라는 사람들이 이 집에 자주 가는데 그 아들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 실제로는 어머니 일을 잘 도와주고 가족 모두가 화목하게 지낸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렇게 편집을 해서 보여주니 아들이 완전히 ‘무개념’으로 보이게 됐다는 주장들이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사실 최근 들어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위기다. 시청률이 3%대로 떨어졌고 화제성도 예전 같지 않아서다. 이유는 어느 정도 패턴이 읽히고 있어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가져온 이야기는 어찌 보면 이 프로그램의 가장 익숙한 이야기인 미담과 분노유발 빌런 이야기의 대비다. 과거 포방터 시장에서 돈가스집과 홍탁집의 대비처럼. 과연 모녀분식집의 감동과 모자닭갈비집의 분노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방송 내용에 대한 ‘악마의 편집’ 주장 같은 이견들이 나오고 있다는 건 이런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가진 문제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만일 악마의 편집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런 방송의 패턴이 더 이상 시청자들에게 모두 어필하지는 못한다는 방증이니 말이다. 과연 이번 편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이 결과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