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바다’ 제작진은 너무 많은 것을 보기만 한 걸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너무 많이 본 사나이>(2000)라는 영화가 있다. 히치콕의 영화 <The Man Who Knew Too Much>의 원제를 패러디한 손재곤 감독의 재기발랄한 데뷔작이다. 살인자가 자신이 살해하는 장면이 촬영된 비디오테이프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디오가게의 모든 비디오를 빌려보다가 영화광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다. 출연하는 사람이나 내용,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JTBC <바라던 바다>를 보면서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이 20년 전 영화 제목이었다. 워낙에 혹평을 듣고 있어서 한마디 더 얹기가 처연하지만 분명 <바라던 바다> 제작진은 너무 많은 것을 봤다.

지난달 29일 첫 방송을 시작한 <바라던 바다>는 포항의 어느 여름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또 한편의 예능 동화를 표방한다. 표지는 기대를 품기에 충분히 화려하다. 이동욱, 김고은, 수현, 로제 등의 스타들이 한적한 시골 바닷가에서 바를 운영한다. 일본의 소품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는 힐링 예능이 펼쳐지기 적당한 무대다. 이들은 스타의 지위에서 내려와 주연급 배우들이 직접 메뉴를 만들어 서빙하고, K팝 스타들이 소박한 공연을 한다. 힘을 합쳐 라이브 바를 운영하면서 좋은 사람의 매력을 발산함과 동시에 동시대를 사는 보통 사람의 감수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익숙한 설정과 스토리이긴 하나 모처럼의 물량 공세인데다 요즘 같은 시국에 로망을 건드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리틀 포레스트>나 <안경>과 같이 이른바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과 풍경이 어우러진 영화가 아니라 분절된 편집으로 여러 이야기를 오려 붙인 초기 왕가위 감독의 옴니버스 구성의 영화에 가깝다. 우선 캐스팅부터 윤종신, 온유, 이수현, 정동환(멜로망스), 싱어송라이터 자이로 등 <비긴어게인>식의 구성과 이지아, 이동욱, 김고은 등 배우를 앞세운 팝업스토어 예능의 캐스팅이 한 그릇 위에 올려졌다. 볼거리도 출연진이 선곡한 음악으로 공연하는 <비긴어게인>과 연예인들이 직접 요리를 하고 서빙하는 <윤식당>, <서핑하우스> 등으로 대표되는 팝업 예능의 풍경이 동시에 나타난다. 여기에 바다 생태계에 대한 경각심과 스킨스쿠버가 추가된다.

아마도 기존의 팝업스토어 예능과의 차이점을 볼거리의 가짓수를 늘려서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잘 안 풀리더라도 자신들의 히트상품인 <비긴어게인> 코드가 심어져 있으니 믿는 구석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바라던 바다>와 같은 팝업스토어 예능의 핵심은 판타지다. 현실에서 한 발 벗어난 시공간에서 소탈하고 좋은 사람들이 한 팀으로 뭉쳐서 무언가를 완수해간다는 스토리가 주는 성취와 이 과정에서의 진정성 있는 몰입이 판타지를 만든다. 서울로 상징되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세계의 울타리를 창조해내는 스토리텔링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만큼은 연예인, 스타라는 현실의 위치와 직업은 리셋이 되고 좋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키워가는 성장 서사가 기분 좋은 흐뭇함을 이끌어낸다. 반복된 일상과 노동에서 찾은 소소한 성취들이 자연풍광과 어우러져 이른바 힐링 예능이 된다. 이는 <비긴어게인>도 마찬가지다.

<바라던 바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인, 울타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데 있다. 거꾸로 보자면 출연자들이 진정성 있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제공이 안 되고 있다. 포항 어느 바닷가의 이야기와 현실을 구분 짓는 경계가 모호하고, 출연자들의 존재를 익히 잘 아는 손님들 앞에서 본래의 업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동화는 현실에 잠식된다. 굳이 먼 포항까지 와서 스타들이 바를 운영하는 것은 배우, 가수 누군가가 아니라 자연인 누구로 서로에게 손님에게, 시청자에게 다가가겠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음악 예능에 대한 믿음이 크더라도 그렇지 역할 변화를 위한 합의이자 몰입의 시발점인 울타리의 중요성을 너무 간과했다.

4회쯤, 시청자들의 비판에 대한 피드백으로 바다 청소, 해양 오염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한 번 더 꺼낸다거나, 라이브 무대의 감동에 방점을 두는 연출, 출장이란 명목으로 출연자들이 개인 스케줄을 왕성하게 다니는 현실, 밀려드는 주문이나 익숙지 않은 일에 좌충우돌하는 노동의 부재 등이 모두 울타리를 약하게 만들고 낮추는 요소들이다. 이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진정성이 떨어진다.

오늘날, 너무 많이 본 시청자들에게 팝업스토어 예능 그 자체만으로 흥미를 이끌 긴 어렵다. 메뉴 개발과 준비(<윤식당>), 음악 리허설과 공연(<비긴어게인>), 스킨스쿠버와 바다 쓰레기 청소라는 메시지 전달(<효리네 민박>) 등 가짓수를 늘리고, <비긴어게인>의 음악예능 코드를 만능간장처럼 활용해 차별화를 두려고 했지만, 제작진만 인정하지 못할 뿐 기존 문법에도 소홀한 데다 안일한 자기복제다.

최근 이런 팝업 스토어 예능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어쩌다, 사장>은 아예 조인성, 차태현이란 비싼 배우들을 열흘간 강원도 화천에 묶어뒀다. 슈퍼 운영도, 요리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달 살기’ 콘셉트처럼 예능 촬영치고는 꽤나 오랜 기간 해당 마을에 머물면서 보여준 진정성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시청자들도 원천리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겨울 이야기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바라던 바다>에서 해양 오염 이야기를 하는 것도 괜찮고, 함께 바를 열심히 꾸려가는 와중에 라이브 무대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바’를 운영한다는 설정의 진정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게 문제다. 숱한 팝업 스토어 예능에 그랬듯 ‘가짜’임에도 기꺼이 몰입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만, 이번 경우는 방송을 위한 방송의 티가 난다. 바를 운영하기에 필요 없는 인원도 너무 많다. 즉 <비긴어게인>의 자기복제를 위해 팝업 스토어 예능의 틀을 빌려온 셈이다. 특히나 팝업 스토어 예능의 볼거리는 노동의 현장에서, 재미는 정서적 충만감과 교감에서 나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몰입을 이끌어내는 진정성이 없다면 그저 쇼로 다가올 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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